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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1:7-14 '탁월한 선택 ④: 목적을 중시하라'

설교방/시리즈 설교

by JJ family 2023. 2. 27. 17:13

본문

2021년 9월 26일 중고등부

서론

지난 5월초 이후로.. 방학이나 연휴가 되도, 이 코로나 상황 때문에.. 가까운 붕따우 조차 놀러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만약 지금 당장이라도, 모든 규제가 풀린다면.. 가장 먼저 어디를 가고 싶으신가요? 대부분 학교에 가고 싶거나, 한국에 방문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것 같아요. 목사님도 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낭, 호이안, 사파.. 이러한 베트남의 관광지를 가서 놀다오고 싶어요. 어찌됐던, 우리가 여행을 한다든지.. 어딘가 방문 하든지.. 할 때에, 가장 먼저 정하는 것이 뭐예요? 목적이지요. 왜 그곳에 가려고 하는지.. 가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그러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지요. 목적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시간 낭비에 돈 낭비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에요. 빨리 성인이 되어서..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는 것도 좋겠지만,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인 것이지요. 바라기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방향을 잘 세워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중고등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론

탁월한 선택.. 그 네 번째 시간, 오늘의 주인공은 사도 바울이에요. 그는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 드리고, 복음 전파를 위해 헌신한 사람이지요. 그런데 처음부터 그리했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그는 율법주의자에 바리새인이었어요. 그리고, 초대교회 당시 세워졌던 일곱 명의 집사들 가운데, 스데반이 순교할 때에..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사람이었어요. 그뿐만이 아니었지요. 함께 사도행전 91절과 2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바울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있었던 사람이었어요. 이방인들은 그렇다 치지만, 유대인인데.. 유대교를 떠나,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여겼어요. 하나님을 배신한 동족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지요.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다가 가두려고 했던 것이에요. 그런데 이 일이 성공하나요? 실패하게 되지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시고, 이후에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어요.

이전에는 바리새인으로서 편안하고 열심히 살다가..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의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어요. 무슨 롤러코스터를 탄 것 마냥, 굉장히 힘들고 불편해 보이는 삶을 살게 된 것이지요. 함께 사도행전 923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바울은 회심하고 나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어요. 원래부터 열정이 많고.. 적극적이었던 사람이었던데다가, 참 진리를 깨닫게 된 상황이다 보니.. 거칠 것이 없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이전보다 훨씬 더 높은 텐션으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이에요. 이 모습을 환영하는 그룹이 있겠지만, 안 좋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누구일까요? 한때 같은 편이었던 유대인들이었어요. 하루 아침에 그리스도인이 되고, 상대 진영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니까.. 배신자로 규정하고 처단하려 했던 것이지요. 심지어 같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 역시, 바울을 죽이려 했던 것을 볼 수가 있었어요.

그렇다면, 유대인들 이외에 다른 모든 사람들은 바울의 복음 전함을 환영했을까요? 사도 바울은 총 세 차례의 선교 여행을 했었는데.. 그가 가는 곳마다 현지에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 들였을까요? 그렇지는 않아요. 복음이 잘 전해져서 교회가 세워진 곳도 있었지만, 사도 바울의 복음 전파 사역을 방해하고.. 핍박하는 무리들도 있었던 것이지요. 함께 사도행전 1619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지금 이 말씀은, 귀신들린 여종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점을 쳐주고, 돈을 벌었던 주인들과 일어났던 에피소드에요. 이 여종은 사도 바울이 지나갈 때마다, 구원의 길을 전하는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이다라고 크게 소리치며 귀찮게 했어요. 안 되겠다 싶어서 귀신을 내쫓았는데.. 이로 인해 돈줄이 끊긴 여종의 주인들이 사도 바울을 고소해서 감옥에 갇혔었던 것이에요. 이런 식으로, 사업에 지장을 받게 된 사람들은 바울을 거부했던 것이에요. 당시에는 도시마다 우상들과 신전이 있었어요. 그래서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라던지.. 신전에 필요한 물건을 제작하거나 공급하는 사람이던지.. 그런 것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바울의 전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어떻게 하겠어요? 더 이상 우상을 구매하거나, 신전에 가서 제사를 드리며 공물을 바치지 않게 되니까.. 수입이 줄어들겠지요. 때문에 그들의 입장에서는 바울이 공공의 적이었던 셈이에요.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지는..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 잘 정리되어 있어요. 함께 고린도후서 1124절에서 27절까지의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시겠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바울은 자신을 적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여러 차례 고소 고발을 당했어요. 때로는 길에서 돌을 맞기도 하고, 독사에 물리기도 하고, 심지어 배가 난파 당한 탓에 바다 속에서 허우적대기도 했었지요. 보통 때에도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었지요. 한 마디로, 예수님을 만나서 회심한 이후에.. 단 하루도 평안하게 살았던 날이 없었다는 뜻이에요.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셔서 그렇지.. 목숨이 열 개였어도 부족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에요.

복음을 전하며 살았던 사도 바울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좀 더 힘들고 어려워서 그렇지, 사실 누구나 인생에 어려움은 있어요. 바울이 회심 전에는 평안했다고는 해도, 그것은 아직 젊었을 때이고.. 유대인들이 모여 사는 예루살렘에서 활동했기 때문으로 쉽게 살아갔을 수가 있지요. 하지만, 나이가 점점 들면 어떤가요? 더 많은 위기와 어려움과 문제에 봉착하게 돼요. 여러분들의 부모님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만큼 우리의 인생은 쉽지가 않은 것이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특별히 예수님을 믿고 나서, 점점 생활이 나아진다거나.. 형편이 좋아진다면 괜찮을 것 같아요. 아니면, 인생 말년에라도.. 그동안의 수고로움과 헌신에 대해서.. 일종의 보상처럼 하나님께서 평안하게 해주신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것마저 없었던 것이에요.

오늘 본문의 상황은.. 사도 바울이 세 번째 선교 여행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있었던 일이에요. 이제 다음 스텝을 준비하면서.. 선교보고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었어요. 그래서 자신이 복음을 전하였던 곳.. 교회를 세웠던 곳.. 중간중간 방문하고, 만나면서 함께 말씀을 나누고.. 격려하고.. 기도하는 시간들을 가졌던 것이지요. 그러다가 일곱 집사 중의 한 명인 빌립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을 때였어요. 그 집의 딸 중에 한 명이 예언의 은사가 있었는데..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이 띠의 주인은 예루살렘에서 붙잡혀서 이방인의 손에 넘겨질 것입니다.’라는 말을 했던 것이지요. 단순히 잡혀 가는 것으로 끝날 것 같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상황은 그렇지가 않았어요. 당시 로마 황제는, 여러분들도 잘 아실 만한.. 네로 황제였어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적대적인 황제였었지요. 이미 황제의 명령에 의해 예수님의 제자들이 순교 당한 사건이 있었을 만큼.. 그리스도인이 붙잡힌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만 했던 일이었어요. 여러분 같으면, 이 예언을 들었을 때에..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요? 설마 그럴리야 하겠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잘 피하거나, 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는 안 하시겠지.’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바울 개인에게도 이 부분에 대해 말씀하셨었기 때문에.. 이미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바울은 분명히, 피하려면 피할 수 있었어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지역에 가서 살고.. 자신이 원하는 데로, 곳곳에 복음을 전하러 다니면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좀 더 오래살고.. 평안하게 인생을 마무리했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의 분명하고도 확고한 인생의 목적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위해 나아가게 한 것이지요. 함께 사도행전 2024절 말씀을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회심한 이후에 바울의 인생 목적은.. 오직 복음을 증언하는 것뿐이었어요. 그 여정의 끝은, 로마 황제에게까지 가서..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었지요. 때문에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해서 알게 하신, 죽음의 위협과 공포도.. 그를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에요.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탁월한 선택.. 첫 번째 시간은 룻이었어요. 그 여인은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에 엄청난 확장성을 경험하게 되었어요. 두 번째 시간은 다윗이었어요. 다윗은 자신이 조금 손해 보더라도, 같은 믿음의 동역자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는 원칙이 있었어요. 세 번째 시간은, 성모 마리아 였지요. 마리아는 어떠한 상황과 어려움을 겪게 되더라도.. 비록 그것이 이해되지 않는 것임에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쪽을 택했지요. 마지막 시간, 사도 바울은.. 인생의 목적에 따라 선택하고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인생의 목적은 정확한 방향을 설정해 주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왜냐하면,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기 때문인 것이지요. 여러분들은 현재 어떠한 목적을 세우며 살아가고 있나요? 단지 세상적인 성공에서 머무르지 않길 바래요. 우리의 궁극적 목적인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그것과 관련된 목적을 잘 세우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아가는 중고등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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