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8일 새벽예배 (새 268장 /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서론
간혹 소설이나 영화 같은 것을 보게 되면.. 이러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어떤 재력가나 관료가, 고아원이나 전쟁 지역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부모 없는 아이들 중에 한 아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와서 입양을 하는 것이지요. 입양된 아이는, 자신을 거두어준 양부모의 은혜에 감사해서.. 혹시나 눈 밖에 나면 버림을 당하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되어, 그야말로 모범적인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사춘기 때에도 일탈이나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항상 자신의 말과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지요. 주변에 친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이를 입양하셔서 키우시는 분들을 몇 번 뵌 적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이 어떠한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유독 열심히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의 선입견일 수도 있겠지만, ‘자유함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신 여러분들은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으십니까? 바라기는, 유업을 이어받을 상속자로써.. 자유와 권리를 누리시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유의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론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율법을 조금 더 특별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후견인과 청지기로 비유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로마 사회의 문화가 반영된 것입니다. 당시 주인의 아들은 아버지가 소유한 모든 것을 취할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후견인이나 청지기까지 아들의 소유였던 것이지요. 대신 그 자녀가 완전한 성인이 되기까지는.. 후견인과 청지기의 감독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때문에 자유인이고.. 상속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통제를 받으며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는 종은 아니지만.. 종처럼 살아야 했던 것이지요. 바울은 이러한 당시 문화를 비유로 설명하면서.. 율법주의적 신앙이 어리석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아버지가 정한 때가 지나서 더 이상 후견인의 지도가 필요 없는 온전한 상속자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좋았지.’하면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려 하는 것은, 정말 미련한 짓이 되는 것이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사상과 학문들이 존재해 왔었습니다. 예수님 이후로는 더 많은 철학과 이념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모든 것들을 ‘초등 학문’으로 지칭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다양한 것들이 포함되어집니다. 먼저 일월성신과 자연들을 비롯한 사람들이 만들어서 섬기고 있는 우상들이 있습니다. 각 나라와 민족들마다 정해놓은 법령, 규칙 등도 있지요. 전통이나 관습.. 일반상식 같은 것도 해당됩니다. 이외에도 과학주의.. 계몽주의.. 합리주의 같은 인간의 이성을 절대화, 극대화 시키는 것들 까지도 ‘초등 학문’의 범주라 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초등 학문’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참된 진리를 가지고 있는지의 유무 때문입니다. 종교가 됐든 철학이나 사상이 됐든.. 세상의 모든 학문들이 추구하는 진리의 종착지는 구원과 영생입니다. 이를테면, 극락정토.. 무릉도원.. 유토피아.. 테크노피아 등..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치게 되었을 때에, 인간의 영혼은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를 탐구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세상의 그 어디에도 정답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답이시고.. 길이 되어 주고 계시지요.
이스라엘은 율법을 통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임시방편으로 주신 것이니만큼, 그것으로 구원받을 수 없음을 알게 하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약속하신 메시아를 사모하도록 하셨지요. 그 이외의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학문들, 앞서 설명 드린 ‘초등 학문’ 아래에서 살아가는 가운데.. 부분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알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학문들을 통해서는.. 절대로 자신이 원하는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들 나름대로는 대단한 종교적.. 철학적.. 성취를 이루었겠지만, 그것뿐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수없이 많고 다양한 ‘초등 학문’이 발생하게 된 배경이.. 끝없이 구원과 영생에 대한 진리를 갈구하다보니 발생한 것이겠지요. 그러한 불편하고 불안한 인생을 살아가게 하시던 가운데..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율법 아래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주의 굴레에서 건져내어 주시고.. 모든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하신 것이지요.
성경에 기록되어져 있는 대로.. 누구든지 예수를 내 삶의 주인.. 구원자로 시인하면, 그 안에 성령이 거하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소위 말해, 성령께서 내주하게 되시는 것이지요. 그것은 다시 말해, 우리의 신분이 노예나 종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옮기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며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끔, 도우시는 역할도 있으시지만.. 우선적으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함이셨다는 것입니다. 모든 신자들로 하여금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시고.. 기쁨과 소망을 주시고.. 각종 은사들을 주시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 수 있도록.. 성령의 열매들을 맺게 하시는 것이지요. 전문 용어로 ‘성화’라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을 날마다 이루어 갈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단 번에 이루어졌고.. 성령님을 통해 계속해서 완성시켜 가시는 것이지요.
이와 같은 원리로,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던..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갈라디아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롭게 되고.. 새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종 종착지가 멸망에서 구원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뀌어지게 된 것이지요. 또한 세상의 모든 사상과 이념으로부터 자유케 되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날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 수 있게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인격적으로 하나님과의 깊은 친밀감을 쌓고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그 어떤 말과 규범으로도 얽매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말씀 안에서..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지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현혹되어.. ‘초등 학문’의 지배를 받으려 했던 것입니다. 자유인의 신분이 되었음에도, 노예나 종의 상태로 되돌아가려 했던 것이지요.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만큼 율법주의 영향이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받게 된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부족하다 생각되어지기 때문에, 무언가를 더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사단의 속임인 동시에,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죄된 본성에서 나온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부터.. 성령께서 내주하시게 되었고, 덕분에 여호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섬기는 신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부른다? 타 종교와 이념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물론 일종의 종교나 다름없는 북한의 주체사상에서는.. 김일성을 ‘아바이 수령 동지’로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사상은 기독교 교리와 성경의 것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기에.. 열외시켜야 하는 것이지요. 어찌됐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시기 위해 애쓰시는 것은.. 분명 본받을만한 부분이지만, 부족하고 연약한 점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정죄하거나 한심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구원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의 그 어떤 불화살 같은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고.. 날마다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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