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26 청소년부 설교
서론
‘교제’라는 단어는 ‘서로 사귀어 가까이 지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여러분들은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을 때.. 보통 어떻게 하나요? 남자들은 함께 목욕탕에 가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하지요. 여자들은 같이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아요. 또는 함께 여행을 가거나.. 게임을 하거나.. 놀이기구를 탄다든지, 여러 활동들을 하면서 가까워지기도 하지요. 간혹, 재난을 당하거나..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동질감을 느끼면서 급속도로 친해지기도 해요. 이렇게 다른 사람과 가깝게 될 수 있는 방법들은, 다양하게 많이 있어요. 오늘은 그 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먹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본론
세상에서 가장 치사하고.. 서럽고.. 소외감 느끼는 상황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가장 공통적인 것은 먹는 것으로 차별 받을 때가 아닌가 싶어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있는데, 살을 빼야 한다는 이유로.. 왕따라서.. 미처 나를 생각하지 못해서.. 등등의 이유로, 먹지 못하게 되면, 몹시 화가 나고 서운한 감정이 생기게 될 거예요. 그것은 때때로 다툼과 분쟁의 이유가 되기도 해요. 설령 먹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식욕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못 먹게 되면.. 마음이 상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일들은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어서.. 모두 비슷한 경험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교회에서도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요. 예를 들어, 우리 교회에서도 매주 오전 예배 마치고, 점심 식사할 때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요. 왜냐하면, 음식을 직접 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주문해서 먹는 것이기 때문에.. 혹여나 성도들이 많이 와서 식사를 하게 되면, 음식이 모자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도 지금이야.. 교회에서 못 먹더라도 집에 가서 먹거나, 근처 식당에 가서 사먹으면 되니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예요. 설령 한끼 정도 굶는다 해도, 저녁까지 못 먹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한 마디로, 마음의 상처를 받고.. 교회 안에서 분쟁이 일어날 만큼, 심각한 상황으로 발전되지는 않을 것이란 말이지요.
하지만 초대 교회 때는 그러지를 않았어요. 그때는, 노예 제도가 존재하던 시대였어요. 오늘날에도 노예 제도가 있는 나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계급 사회가 있는 나라가 상당히 많이 있었어요. 인도의 경우에는 지금도 여전히 ‘카스트’라는 신분 제도가 있기도 하지요. 어쨌든, 신약 시대 당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 중에는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어요. 그 중에는 귀족들도 있었고.. 부유한 사람들도 있었어요. 지금의 교회도 이 부분은 비슷하지요. 여러 다양한 직업과.. 재산을 소유한 정도와.. 출신 배경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그래서 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신앙생활을 하게 되지요.
문제는, 초대교회.. 특별히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고린도 교회의 경우에는.. 그러지를 못한 것이에요. 혹시 지난 주 설교 내용을 기억하나요? 초대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모여서 어떻게 한다고 했지요? 함께 떡을 떼며.. 날마다 모여서 같이 식사를 했다고 했어요. 식탁 교제가 가장 중요한 요소였지요. 예배에서도 그 부분이 강조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보통 네 가지 요소가 있었는데.. 회당이나 성전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참석하고 나면, 다같이 공동식사를 했어요. 우리가 주일 예배 후에 식사하는 것처럼, 식사한 것이지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성만찬을 한 뒤에, 예언이나 방언 같은 특별한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여기에서 문제가 된 것은 두 번째, 공동으로 식사를 하는 것이었어요. 당시에는 성도들이 각자 음식을 가지고 왔어요. 자신이 좋아하거나 잘 먹는 음식 위주로 가지고 왔겠지요. 귀족이나 부자들은 아무래도 가진 것이 많으니, 맛이 좋고 고급스러운 음식을 가지고 왔을 거예요. 자신의 체면 때문이라도 그렇게 가지고 왔겠지요. 노예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어떠했을까요? 거의 빈 손으로 오거나.. 아니면 식사가 거의 끝나가고 음식이 대부분 소진되었을 때, 도착할 수 있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와야 했기 때문이지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면서, 일을 마치자마자 부리나케 왔는데.. 먹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에요.
어떠한 현상이 발생했을까요? 그 다음 순서인 성찬식에 큰 영향을 끼쳤어요. 성찬식에 사용되는 것이 어떤 거지요? 빵과 포도주에요. 각자 알아서 빵을 떼고, 대접에 담긴 포도주를 마시는 것인데.. 늦게 와서 배가 고픈 노예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배가 고픈 탓에 빵도 많이 떼서 먹고.. 포도주도 취할 정도로 벌컥벌컥 마시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뒷 차례에 있던 귀족이나 부자들이 성찬에 참여할 수 없게 된 것이지요. 이것 때문에 고린도 교회 안에는 심각한 대립과 분쟁이 있게 되었어요. 자신의 과오는 돌아보지 않고.. 서로 상대방 탓만 하게 된 것이에요.
어떠한 상황이었는지 이해가 되시나요? 그러면 본문 말씀을 통해서 정리해 보도록 합시다. 함께 27절에서 29절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성만찬을 제정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그 사건을 기억하라는 것이에요. 예수님께서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 그것을 통해서만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고.. 영생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음을 기억하라는 것이지요. 그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사건..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의 상태와 신분이 바뀌게 될 수 있는 근거가 된 사건을 잊지 말고, 기념하라는 것이지요.
성스럽고 거룩하고 엄숙하게.. 그러면서도 감사와 기쁨으로 참여해야 하는 성찬식이, 자신의 배고픔과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연결되어 있는 성찬식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이.. 성찬식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교회에서 성도들을 징계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성찬식이에요. 왜냐하면, 성찬식은 세례와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자의 표지예요. 그만큼 중요한 것이지요.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라 말은 했지만.. 그들 안에 존중과 배려가 없어서 이와 같은 불상사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함께 본문 33절과 34절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시겠습니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고린도전후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모든 사람들이 모일 때까지 식사하는 것을 기다리라고 권면합니다. 혹여 배고파서 그 시간까지 기다리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 있거든.. 집에서 먼저 먹고 오는 것도 괜찮다고 말씀하시지요. 왜 그렇겠습니까? 불신자들에게 판단을 받는 공동체가 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초대교회 때부터도.. 교회는 사랑과 희생과 거룩함이 가득한 공동체로 인식이 되어 왔습니다. 다른 종교나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사건 사고에 대해서는 대중들이 그다지 크게 반응하지 않지만.. 교회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지요. 약간의 잘못과 실수에도.. 벌떼처럼 달려들어서 정죄하고 비판하기 일수 입니다. 항상 감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8절과 19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무슨 뜻이에요? 세상과 하나님은 적대 관계에 있어요.
물론 하나님은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처럼.. 이 세상을 사랑하시지만, 세상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지요.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해서 타락한 이후로.. 세상 권세는 마귀에게 속하게 되었어요. 다른 종교들은 모두 타락한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무슨 짓을 하든 그러려니 하지만.. 교회에 대해서는 그렇지가 않은 것이지요. 교회 역시 연약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여서 얼마든지 불화가 일어날 수 있고.. 사건 사고가 발생할 위험성도 내재되어 있지만, 세상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지요. 마치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눈여겨보고 있는 것이에요.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조심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함께 베드로전서 4장 8절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시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교회 안에 모인 우리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특별히 잘 나거나, 훌륭해서 있는 것이 아니에요. 어떤 면에서 보았을 때, 세상 사람들보다 더 못한 부분이 많이 있어요.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몰라서 못 하는 것인데.. 우리는 알면서도, 그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면서도 하지 못 하는 경우가 더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에도, 우리 안에는 여전히 죄의 습성들이나.. 연약함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때로는 시기하고.. 질투하고.. 다투고.. 그럴 수 있지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감정의 흐름들이 부정적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신 그 사랑..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헌신하신 그 사랑.. 그리고 어떠한 순간에도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동행하심.. 이 부분을 생각하고, 늘 기억한다면.. 우리가 사랑하지 못하고, 존중하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할 사람은 없는 것이지요. 바라기는, 그 사랑을 기억해서..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주고, 아름다운 교제를 해나가는 청소년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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