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16 새벽 설교 (새찬송가 70장 / 피난처 있으니)
내용 요약
요한계시록 16장은 7.7.7 재앙.. 그러니까 일곱 개의 인, 일곱 개의 나팔에 이은 마지막 일곱 개 대접의 심판이 무엇인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의 마지막 코스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재앙의 내용들은 앞선 일곱 나팔의 재앙과 유사성을 갖고 있습니다. 계시록 8장에서 11장에 기록된 일곱 개의 나팔이 불리어졌을 때의 심판 내용을 살펴보면.. 전반부 네 개째의 나팔까지는 마치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처럼, 자연을 통한 재앙이 발생하고.. 이후의 세 가지 나팔 재앙들은 하나님께 택함 받지 못한 사람들의 죽음과 그들이 받게 되는 심판에 대해 다루고 있지요.
이와 유사하게 16장에서도 자연재해에 가까운 심판과 불신자들.. 택함 받지 못한 사람들이 받게 되는 심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특이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일곱 개 나팔 재앙의 전반부 때에도 그랬고.. 지금 일곱 대접의 재앙도 그렇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당시, 이집트에 내려졌던 열 가지 재앙과 느낌이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 심판들은 마지막 종말의 때에 일어나는 것이니만큼.. 어느 특정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게 된다는 것에 있지요.
본론
오늘은 17절부터 21절을 중심으로 16장 전체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건강한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 필요한 것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로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안에는 축복과 저주의 내용들이 곳곳에 기록되어 있는데.. 축복의 메시지들은 그렇다쳐도, 저주에 관련된 말씀들을 볼 때마다.. ‘어이쿠, 내가 만약 조금이라도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하게 되면.. 이러한 벌을 받게 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공의로우신 분, 무서우신 분, 내가 죄를 짓나 안 짓나 감시하시는 분.. 으로 인식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으실 때에.. 신명기 28장처럼, 축복과 저주에 대한 말씀이 나오게 되면.. 굳이 저주와 관련된 것에 집중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축복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시면서.. ‘아,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구나. 이렇게 살아야겠다.’라고 하시면 되는 것이지요. 요한계시록의 재앙과 심판에 대한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7.7.7 재앙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는 심판의 대상자는.. 저와 여러분들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인치심을 받고.. 택함을 입어서, 하나님 보좌 앞에서 영광스러운 예배를 드리게 될 것이라 말씀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의 심판 메시지를 읽어 내려갈 때에는.. 괜한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건강한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시는 동시에.. 복음을 전해야 할 잃어버린 영혼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제 본문이었던 15장 1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진노가 끝나게 될 일곱 대접의 재앙이 시작됩니다. 첫 번째 천사가 대접을 땅에 쏟으니, 하나님을 대적하던 무리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게 되었습니다. 출애굽 당시 여섯 번째 있었던 재앙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천사의 대접은.. 각기 바다와 강을 비롯한 모든 물의 근원들이 피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집트 열 가지 재앙에서 첫 번째 일어났던 것과 비슷한 형태이지요. 다섯 번째의 대접을 쏟아내자, 나라가 어둠에 뒤덮이는데.. 출애굽 아홉 번째 흑암 재앙을 연상시키게 합니다. 여섯 번째는 유브라데의 강물을 마르게 하고.. 동방의 왕들에 의한 침공이 가능하게 되어지는데, 이들은 천하의 왕들로서 적그리스도의 명령에 복종하는 자들임을 계시록 17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동방에서 오는 왕들.. 그러니까 천하의 왕들이 모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함께 13절과 14절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시겠습니다.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천하의 왕들이라는 것은, 세상에 속한 왕이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는.. 아무리 포장을 한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원칙으로 통치하는 왕이라는 것이지요.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음성을 듣는 것이고.. 귀신의 영에 미혹 당하는 것입니다. 이들을 ‘아마겟돈’이라는 곳에 모아서 하나님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준비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최후 결전을 벌일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명칭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는 신학자들 역시 이렇다 하는 대답을 못 내놓기는 합니다만.. 중요한 것은, 백전백패가 분명한 싸움인데도.. 자신들의 과오를 회개치 않고, 끝까지 싸워보겠다는 어리석음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무지몽매함이.. 결국에는 파멸에 길로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는 언제고 넘어질 수 있는 존재이고.. 마음으로든, 말이나 행동으로든 쉽게 죄를 짓는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겸비해야 구원의 길에서 멀어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지요. 아무리 대형교회의 목사님이나 장로님이라 하더라도.. 엄청난 사역을 일으킨 선교사님이라 할지라도, 모든 일들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소유라 생각하고, 자신이 잘 나서 위대한 업적을 이룬 것이라 착각하게 되면.. 겉으로만 주의 일을 한다 할뿐이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굳이 실명을 거론하지 않아도, 매스컴에서 종종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솔로몬이 더 크고 위대한 평가를 받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다윗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한 나라의 왕으로 있었으니만큼.. 어떠한 범죄에 대해서도 면책특권이 있고, 왕권으로 합리화시킬 수도 있었는데도..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죄를 깨닫게 하셨을 때, 바로 그 자리에서 회개하는 영성.. 그러한 영성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지요.
드디어 마지막 일곱 번째 대접이 쏟아집니다. 앞선 일곱 개의 인과 일곱 개의 나팔 재앙을 모두 마무리하는 것이기에.. 우리가 기록된 말씀으로는 읽지만, 그것이 실제적인 사건으로 발생하게 될 경우.. 얼마나 어마어마할지, 상상을 초월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17절 말씀 후반부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친히 ‘되었다’라는 말씀을 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재앙들이 있는지 먼저 18절에서 20절까지의 말씀을 살펴보면, 번개에.. 음성들에.. 큰 지진이 함께 있을 것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소위 말해 혼비백산 할 것입니다. 이것 때문인지, 모든 나라의 성들은 무너지고.. 섬들과 산악도 없어졌다고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함께 본문 21절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시겠습니다. “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하나님께서 완전 초토화를 해놓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되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이 마지막 재앙에서.. 수치적으로 계산해 본다면, 스물 한 번째 심판에 대한 말씀은 한 가지 특이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박의 재앙이 얼마나 극심한지..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비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 일곱 번째 인이나 일곱 번째 나팔은, 각기 다른 여섯 개들에 비해 훨씬 강렬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에는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어도.. 앞서 있었던 재앙들을 한데 모아 한꺼번에 퍼붓는 듯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했을지라도., 불신자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대한 기록들은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 정도쯤은 견딜 수 있어.’라는 생각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마지막 피날레에서는.. 하나님께서 야심차게 준비하신 재앙, 한 달란트면 34킬로그램입니다. 쉽게 생각해서, 2리터짜리 생수 17개 정도의 무게입니다. 한개만 해도 꽤 무거운데.. 17개를 합친 것만 한 사이즈와 무게가 되는 우박이 하늘에서부터 내 머리 위로 떨어진다 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어찌 보면,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비방하고 원망하는 것도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때에 어떠한 반응을 하여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이지요.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머리에 재를 뿌리고, 굵은 베옷을 입고, 식음을 전폐하며,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도록 죽기 살기로 매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비방하고 있으니.. 결국 이들의 모습은 출애굽 때에.. 끝끝내 자신의 완악함을 유지하고 하나님을 대적해서, 스스로와 이집트를 망하게 한 바로 왕과 다름이 없게 되는 것이지요.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심판의 말씀이나, 구약과 신약에 기록된 저주의 말씀을 보면서, 두려워 떨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끔씩 넘어지더라도.. 항상 주님만 바라보면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다니건 다니지 않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의 승승장구와 성공을 바라보며, 부러워하거나.. 믿음과 신앙의 삶을 고수할지 고민할 필요도.. 지지리 복도 없는 것 같은 자신의 인생을 한탄할 것도 없습니다. 악인들의 형통하는 듯한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연단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손과 눈에서 말씀이 떠나지 않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기본인 말씀과 기도를 놓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혼탁하고 어지러운 이 세대 가운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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