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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4:1-11 '나는 누구?'

설교방/새벽 설교

by JJ family 2019. 11. 13. 23:30

본문

2014. 4.24 새벽 설교

 

서론

여러분들은 미운 오리 새끼 이야기를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요즘은 올바른 국어 사용을 위해 미운 아기 오리로 출간되고 있기는 합니다만..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느 한 작은 농장에 아기 오리들이 하나 둘씩 알을 깨고 나오는데.. 맨 마지막 알이 조금 늦게 부화를 했습니다. 그 마지막 알에서는 엄마 스스로도 의문스러울 정도로 이상하게 생긴 오리가 나왔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크고 못 생긴 막내를 놀리며,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따돌렸습니다. 함께 놀아주지 않는 것이지요. 같은 농장에 살고 있는 돼지와 닭도 이 막내 오리를 외면했습니다. 결국 왕따를 이겨내지 못 하고 농장을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청둥오리가 있는 곳으로 갔지만, 그곳에서도 자신의 외모는 비웃음거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눈이 안 보이는 할머니의 집에 갔는데, 그곳에서는 알을 낳지 못하는 수컷이라는 이유로.. 고양이와 닭에 의해서 내쫓김을 당했습니다. 이리저리 떠돌던 아기 오리는 우연치 않게 호수에서 멋지게 날개짓 하는 백조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생각했지요. , 나도 저렇게 멋지게 생겼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다가 겨울이 되어 얼음 연못에 갇힌 오리를 어느 할아버지가 집으로 데려 왔습니다. 그 집에 있던 아이들이 오리를 잡으려다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할아버지는 그것을 오리가 한 것으로 착각하고.. 거기서도 내쫓겨지게 됩니다. 결국 이 오리는 추위와 배고픔을 참으며 홀로 겨울을 나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봄이 왔습니다. 막내 오리는 부러움의 시선으로 백조들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백조들이 자신에게 와서 말을 걸었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랐군요!” 이 말을 듣고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깜짝 놀라게 됩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정체성은 오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자신이 가장 부러워했던 백조였던 것입니다. 새롭게 백조로 재탄생한 이 오리는 더 이상 비웃음거리나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백조가 된 지금, 오리들 틈에 갈 필요도 없습니다. 다른 백조들과 함께.. 백조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맘껏 누리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지요.

본론

오늘의 본문은 우리가 누려야 할 정체성인 하나님의 자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더 이상 과거의 죄인된 모습.. 본질상 진노의 자식의 신분으로 되돌아가려 하지 말고, 새로이 바뀌어진 신분을 따라 살아가라는 것이지요. 물론 예수님을 믿기 전의 저와 여러분은 노예와 같았습니다. 아무런 소망도 없었고.. 무언가 요구할 수 있는 권리도 없었습니다. 설령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큰 차이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행위를 지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이.. 그 율법을 지켜 의인이 되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주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절대로 준행할 수 없는 자신의 죄성을 깨닫고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기 때문이지요. 유대인들이 비록 하나님의 택하신 민족이고..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았다고는 하나, 그것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특권을 누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한 것조차 없었던 우리보다야 나은 상태라 할 수 있겠지만.. 딱히 그렇다고도 볼 수 없는 것이.. 유대인들은 큰 유산을 상속받기로 약속받은 미성년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나라마다.. 부모의 유언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부모가 막대한 재산을 자녀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때, 자녀가 아무리 똑똑해도 미성년자 상태라면.. 아이의 후견인이 재산을 관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변호사나 집사.. 비서 등이 후견인을 맡지요. 이런 경우, 그 자녀가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특별한 조건을 갖추어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단순히 20세 성인이 되는 것 이외에도.. 대학을 졸업한다거나, 결혼을 해야 한다거나.. 이런 조건이 붙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유산을 상속받기가 어려워집니다. 어떻게 보면, 노예나 다름없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따라야 하는 유대인들이나.. 일반적인 법과 가르침을 따라야 하는 이방인들이나..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라야 한다는 것에 있어서는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가장 최적의 타이밍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 가운데 보내셨습니다. 본문 4절에서는 이에 대해 때가 차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 가장 완벽한 시기였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의 속국이었지만, 여전히 율법이 지배하던 시절.. 예수님께서는 한 여인의 순종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율법에 순종하시고..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십자가 사건을 통해 율법에서 가장 저주하는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마다, 율법으로부터.. 세상의 초등학문으로부터 자유케 하셨습니다.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본문 6절에서 나오고 있는 것처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해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 유산 상속 대기자의 신분에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 유산 상속자의 신분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관계가 개선되어지고.. 신분이 바뀌어졌다면, 이제 할 일은 그 관계와 신분을 마음껏 누리는 것입니다. 허용된 범위의 자유함을 최대한 즐겨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만일, 그 관계와 신분이 부담 되서.. 혹은 자유함을 누리기 싫어서.. 계속 노예의 신분으로 돌아가려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아버지께 받을 거대한 유산을 운용하는 것이 겁나서 후견인 밑에 있으려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정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모두들 이 사람에 대해 바보라고 손가락질 할 것입니다. 노예 근성이 뼈 속 깊이 뿌리 박혀 있다고 조롱의 대상으로 삼게 되겠지요. 왜 그렇습니까? 노예에게는 자유함도 없고.. 받을 수 있는 재산이 없지만, 자녀는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재산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한량없는 사랑과 자비하심을 인하여..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고 죽어서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어 그 분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공로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사실과 관련하여,, 우리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요. 이제 우리는 그 분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은혜를 보답할 수는 없겠지만, 그럴려고 노력하면서 매일매일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한국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스토리 중의 하나는 출생의 비밀입니다. 아이가 바뀌었거나.. 갓난아기 때 입양되었거나.. 미아를 데려다 키운다거나.. 이런 것이지요. 이런 한국 드라마를 볼 때마다,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입양되었건 어쨌건 간에.. 양부모가 친부모 이상으로 잘 해주는 데도, 결국엔 친부모를 찾기 위해 발버둥 친다는 것입니다. 물론, 양부모가 학대한다거나.. 다른 형제들이 괴롭힌다면, 당연히 친부모를 찾아 떠나든지 해야겠지요. 호기심이나 뿌리 찾기 차원에서 찾아보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물심양면 잘 해주고.. 유산도 상속 해주려고 하는 양부모를 떠나는 것은, 아무리 드라마라 해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고생을 안 해봐서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것이겠지요. 오늘 설교의 서두에.. 미운 아기 오리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자기가 백조인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은 자기가 자랐던 농장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아무 소망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게 크고 못 생겼어도 엄마 오리와 형, 누나 오리들이 잘 대해주었다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갔었겠지요. 처음부터 떠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백조의 모습이어도.. 오리처럼 살았을 것입니다. 율법과 복음이 바로 이런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율법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질 수 있다면, 애초에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시지 않으셨어도 됐습니다. 하지만, 율법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기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더 이상 율법의 행위에 얽매여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순간, 혹시라도 여러분을 옭아매려는 것이 있습니까? 그 무엇이 됐든..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주시는 자유함과 복락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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