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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7:9-17 '구원받은 성도들의 복락'

설교방/새벽 설교

by JJ family 2019. 10. 11. 13:16

본문

2019. 7. 26 새벽설교

 

내용 요약

계시록 7장은 앞선 6장에서 여섯 번째까지의 인을 떼고.. 8장에서 일곱 번째 인을 떼기 직전, 새로운 환상을 보는 장면입니다. 총 일곱 개의 인들 중에서 여섯 개의 인들이 개봉되고.. 그에 따른 재앙과 사건들이 일어나다가, 잠시 중단되는.. 환상 속에 환상이 임하고 있는 것인데, 특별히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초점이 맞춰지고 있습니다. 이 환상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1절에서 8절까지는 요한의 시선이 땅을 향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시면, 땅 네 모퉁이에 각기 네 명의 천사가 서 있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들은 6장에서 등장했던 네 명의 서로 다른 색의 말을 타고 있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 천사들이 잠시 심판을 중단 하도록 2절에서 또 다른 천사가 등장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종들을 인치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해서 인침을 받은 수의 무리가 십사만 사천인데..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저와 여러분들처럼.. 정상적인 교단의 교회를 다니는 그리스도인들보다, 이단들이 더 좋아하고 집중하는 숫자입니다. 대표적으로 신천지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실질적인 숫자에만 국한시킨 탓에.. 십사만 사천에 포함될 수 있는 자격 요건을 여러 차례 번복시켰고, 2014년에 그 숫자가 넘어가자.. 세상의 종교를 통합시켜야 한다는 새로운 전제를 만들고.. 무한 경쟁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상징적인 숫자에 불과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스라엘로만 볼 것인가.. 언급된 열 두 지파 중에서 유다 지파가 왜 가장 먼저 나오는지, 단 지파는 왜 빠져있는지, 므낫세 지파는 요셉 지파에 귀속되지 않고 왜 따로 언급되고 있는지.. 십사만 사천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와 함께 다양한 의문들과 관련된 견해들이 있어왔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 약간의 차이점은 있지만.. 공통된 의견은, 영적 이스라엘 백성..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모든 성도들을 의미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아시고.. 한 사람이라도 부족하거나 넘침이 없이 완성될 숫자임을 뜻합니다. 반면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어느 정도인지는 하나님 이외에는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인원임을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라고 9절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9절에서 17절까지는, 사도 요한의 시선이 땅에서 하늘로 옮겨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흰 옷을 입고.. 종려가지를 들며, 자신들을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과 예수님께 영광과 찬양의 예배를 드리는데.. 16절 말씀을 참고해 보면, 순교자들로 보여 집니다. 꼭 순교자들이 아니라 할지라도, 환난과 핍박 중에도 끝까지 믿음과 신앙을 지킨 사람들이라 볼 수 있을 텐데.. 예수님께서 이들의 목자가 되시어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라 약속하고 계십니다.

본론

오늘은 본문 9절에서 17절을 중심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리스도교는 항상 도전 받아왔습니다. 비단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그 이전부터 세상은 하나님께 도전하고 양립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지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된 이후로.. 힘과 폭력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가인 계열과,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분의 뜻대로 세상을 통치하려는 셋 계열이 나뉘게 되었습니다. 어느 샌가 가인 계열은 바알과 아세라를 중심으로 세상 문화를 잠식해 갔고..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셋 계열은 가인 계열에 대항하여 승리와 패배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제사장 국가로서 하나님의 통치 원리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려야 할 이스라엘은.. 결국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해 패망하게 되었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로.. 이방인에게까지 편만하게 복음이 전파되어지게 되었습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는 순결한 신앙을 유지하다가.. 기득권을 얻게 되면, 타락하기를 반복하다가.. 21세기에 접어 들면서는 쓰나미 같은 공격을 받게 됩니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지요.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고, 어느 누구나 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더군다나 마치 구정물처럼 세상을 혼탁하게 만들어서.. 교회 안에도 세상의 문화와 풍조가 잠식해 들어가고 있습니다. , 명예, 인권, 웰빙, 웰다잉, 욜로 등등.. 어느 것이 세상 문화이고, 무엇이 성경적 가치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된 것이지요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성도들.. 다른 말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누리게 되는 삶에 대해 크게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날마다 예배하는 예배자의 삶입니다. 함께 본문 9절과 10절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시겠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종말의 때에.. 세상을 심판하시던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잠시 멈추게 하시고.. 원근각처에서 택하신 백성들을 불러 모으십니다. 모든 성도들이 모이자, 그들은 한 목소리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예배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과 예수님 곁에 있던 모든 천사들도 그 예배에 함께 동참했다고 11절과 12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배하는 것이 우리가 천국에서 누리게 될 삶.. 또는 천국에서 하게 될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뒤집어 말하면, 우리가 이 땅에서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 인생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의 삶을 살게 될 때에,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천국이냐 이 땅이냐..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냐 드리지 않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바울과 실라가 전도 여행 중에 감옥에 갇혔을 때 보여주었던 모습을 보더라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귀신들린 어느 여종을 낫게 해주었다가.. 억울한 누명을 받아서, 옷도 찢기고.. 매도 맞고.. 차꼬에 채워진 상태에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던 가운데 심한 고난과 핍박을 받은 것이지요. 차디찬 감옥에서 온 몸이 아파오고.. 맞으면서 생긴 상처와 멍으로 쑤시고, 따끔거리고.. 오랜 전도 여행으로 얼마나 지쳐있었겠습니까? 혹여라도 하나님을 원망할 일푼의 힘조차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을 드렸습니다. 그것도 조그맣게 작은 소리로 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던 모든 죄수들이 들을 정도로 있는 힘껏 기도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어떠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아시다시피, 큰 지진과 함께 옥문이 열리고 모든 매인 것이 벗겨지게 되었습니다. 그 일들을 통해 간수와 그의 가족들이 구원을 받게 된 것이지요. 하늘에서는 천국 잔치가 열렸을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를 비롯한 그곳에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도.. 천국을 경험했겠지요.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늘에서 누리게 될 또 하나의 삶은.. 성부, 성자 하나님의 돌보심과 위로하심입니다. 함께 16절과 17절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시겠습니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앞서 언급했듯이.. 과거에도 신앙과 믿음을 지키기 어려웠지만, 오늘날에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어렵습니다. 과거에는 기독교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도 많이 있었고.. 세상적인 교육이나 영향을 받지 않으려면, 얼마든지 차단이 가능했었습니다. 하지만, 도시화, 문명화, 과학화 되어 가면서.. 점점 세상적인 가치와 문화들을 배제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과 같은 매스 미디어가 대중화되고, 보편화 되어 지면서.. 그곳에서 방영되고 출간되는 모든 뉴스, 드라마, 영화, 예능 프로들이.. 그리스도인들의 마음과 생각들을 좀 먹고 있지요. 어디 그뿐입니까? 컴퓨터와 스마트폰이라는 원자 폭탄 급의 강력한 무기가 등장해서.. 인터넷과 각종 게임 및 프로그램들을 통해, 선한 영향력 보다는 악한 영향력을 더 많이 받고 있지요.

문제는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보다.. 매스 미디어나 컴퓨터.. 혹은 스마트폰 등을 통해 세상과 교제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아서.. 하나님과 자신이 조금씩 멀어지고 분리되어 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것들을 잘 활용해서.. 좋은 설교도 듣고.. 말씀도 공부하고.. 좋은 찬양도 듣고.. 그러면 좋겠지요. 그런데 사람이 어디 그렇게 합니까? 분명 그 안에는 실생활에 필요한 정보들도 많고.. 전문성이나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콘텐츠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락적이고.. 자극적이고.. 쾌락적인 것을 소비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단순한 정보 전달이나 교육적 내용이라 하더라도.. 상당 부분이, 혼합주의와 상대주의.. 인본주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네가 세상의 주인이다.’라는 말입니다. 당신이 왕도 될 수 있고, 신도 될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서, 선악과를 들이 대면서 끊임없이 속이고 유혹하고 있는 것이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박해의 정의를,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려는 세상의 모든 수단과 방법들로 정의한다면.. 오늘날의 고난과 박해는 앞서 언급한 세상의 풍조라고 보여 집니다. 이미 2천년의 세월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을 힘들고 어렵게 하면.. 더 순결한 신앙과 함께 복음이 전파되지만, 기득권을 갖게 하고..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면.. 타락하거나, 믿음이 퇴보한다는 것을 사단이 배운 것이지요. 그 대표적인 예를 미국과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 그리고 우리나라가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과거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쓸 때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목숨의 위협을 받는 핍박이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사회적인 왕따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무식하고, 융통성 없고, 세상의 흐름을 모르는 바보로 낙인 찍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신앙과 믿음을 지키면.. 돌보시고 위로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주는 도전은..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풍조와 가치관을 따라서.. 잘 먹고 잘 사는 것, 성공하는 것, 자녀들 좋은 학교에 가고 취업 잘 하는 것, 이러한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며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비록 주리고 목마르고.. 좋은 집에 거주하지 못하고, 좋은 옷을 입지 못해서 해나 뜨거운 기운에 상하더라도.. 그러다가 혹여 목숨을 잃더라도, 예수님께 붙어있으면.. 그 모든 것을 보상하고도 충분히 넘칠만한 상급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힘써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그의 삶이 마칠 때까지 열심히 가나안 땅을 정복했습니다. 그리고 임종하기 직전.. 유언을 남깁니다. 그것이 23장과 24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특별히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2415절 말씀인데요. 제가 읽겠습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우리에게 여호수아와 같은 결단이 있어야 할 줄을 믿습니다. 당신이 세상의 주인공이다. 신이 될 수 있다. 절대적인 가치와 진리는 없다.’라고 말하는 세상을 향해,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길 것이다.’라고 결단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해서, 저 천국에서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예수님과 하나님의 돌보심과 위로하심을 날마다 경험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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