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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5:13-27 '선한 영향력'

설교방/새벽 설교

by JJ family 2019. 6. 23. 22:53

본문

2013년 8월 14일 새벽설교 (359/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서론

교회 내의 다툼과 분열이 세상 법정에 까지 가게 되는 것을 볼 때에,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물론 폭행이나, 성추행, 잘못된 헌금 사용 등 어느 특정 부분에 대해서는, 경찰이나 판검사의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어나지 말아야 할 상황인 것이고, 특정 사건사고가 아닌 다음에야.. 교회 안의 문제는 교회 안에서 끝나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별것도 아닌 것을 문제 삼아 교회가 갈라서고.. 갈라져서 나온 교회가 원래의 교회를 향해 재산분할 청구를 하고.. 이런 뉴스를 신문이나 방송에서 접하게 되면, 주의 길을 가는 사람으로서 낯 뜨거워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열심히 지키며 살아가도 부족할 판에.. 각자의 이권과 세상적인 욕심에 눈이 멀어 그리스도인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면, 비기독교 신자들을 향해 너무 부끄러운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툼과 분열의 자리가 아닌, 화목케 하는 자리에서 선한 영향력을 흘러 보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론

오늘의 본문에서 등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불쌍한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한 사도 바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끝까지 구약의 율법만을 고수하는 유대인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불쌍한 사람은 베스도 총독입니다. 251절 말씀에 의하면, 베스도는 유대의 총독으로 부임한지 3일 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얘기는 유대인들에 대해서 잘 모르고, 그 지역의 특성과 관련해서도 알지 못할 때라는 것입니다. 물론 발령 받아서 부임하기 전에 사전 조사를 했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현장의 상황은 언제나 그 조사한 내용들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정확한 정보를 빠른 시일 안에 수집할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따라서 어느 일정 기간 동안의 분위기 파악 시간이 필요한 것인데, 이 베스도는 오자마자 가장 민감하고 다루기 힘든 문제를 맡게 됩니다. 일종의 종교재판을 맡게 된 것이지요. 이스라엘은 이 당시나 오늘날이나.. 가장 예민한 부분 중의 하나가 종교입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유대교, 가톨릭, 기독교, 이슬람교 등 4개 종교의 발흥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가톨릭과 기독교와는 어느 정도 괜찮지만,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주변의 중동 국가와는 그렇지가 않지요. 어쨌든, 같은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관점에서나.. 당시 원고인 유대 제사장들이나.. 피고인 사도 바울에게는, 이 고소 사건이 심각하면서도 위험한 상황이지만, 베스도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약간은 이해할 수도 없고,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한 그런 상황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로마의 법으로는 아무 죄도 없는 선량한 사람을, 단지 조그만 속국의 유력자들이.. 자신네들이 오랫동안 믿어왔던 종교의 내용과 다른 이상한 소식을 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여야 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약 베스도가,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면, 이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대충 처리했을 것입니다. 편하게 총독 생활을 하기 위해, 원고인 제사장들의 손을 들어주었겠지요. 하지만, 역사적인 기록에 의하면, 베스도는 선량한 정치가였다고 합니다. 때문에 법적으로 처리하려다 보니,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에는 이 베스도보다 더 어렵고 곤란한 상황을 만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본디오 빌라도입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엄청난 고문을 가하고 심지어 십자가에 죽게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실.. 그에게는 아무 죄가 없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행했던 채찍질을 포함한 모든 고문들은, 예수님을 풀어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한 고문을 받게 하면, 사람들의 동정심으로 인해 사면을 요청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더군다나 성경은 그가 얼마나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노력했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묘사하고 있기도 합니다. 타의에 의해 십자가 처형을 판결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우린 신앙고백을 할 때마다, 예수님께 고난을 주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한 장본인으로 본디오 빌라도를 정죄합니다. 약간 여담이기는 하지만, 가끔씩 사도신경을 새롭게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고난과 십자가 처형을 받게 한 사람들은, 빌라도 총독이 아니라.. 당시의 유대 종교지도자들이었고, 바로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유대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고소를 당하고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던지, 우리의 죄로 인해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정도로 해야 하는 것이지요.

제가 이러한 얘기들을 계속해서 하는 이유는, 우리의 이기적인 말과 행동으로 인해 복음이 전하여 지는 것이 방해받을 수 있음을 말씀드리기 위함입니다. 베스도는 유대교도.. 기독교도 믿지 않는 이방인입니다. 전도 대상자라는 뜻입니다. 불신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유대 제사장들의 행동을 본다면, 베스도는 무어라 생각하겠습니까? 우와, 이 사람들은 정말 신앙심이 깊고 열정이 많은 사람들이구나. 역시 제사장이라 다르긴 다르네.’라고 생각할까요? 절대 아닙니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없는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그들의 행동을 보고, 유대교가 비합리적인 종교이고.. 잘못 믿었다가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면서는 어떻겠습니까? 힘이 없는 종교, 핍박 받는 종교라고 생각하겠지요. 이들의 행위로 베스도는 만에 하나, 유대교도.. 기독교도 믿을 수 없게 된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교 사역을 방해하는 것이지요. 자신도 모르게 적그리스도와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라도 경솔한 말과 행동으로 인해, 불신자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을 주신 적은 없습니까? 제가 아는 어떤 분은 금식한다는 이유로 중국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음식을 드시지 않았습니다. 함께 했던 중국 사람은 당연히 그 이유를 물었지요. 자신의 영성을 위해 금식함을 얘기했고, 그러면서 복음을 제시했다고는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런 종교라면 난 믿지 않겠다.”였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래도 복음은 제시했으니 다행이다.’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개인의 영성은 유지했을지 몰라도, 상대방의 마음 문을 닫히게 했으니 잘못했다.’라고 생각하십니까? 제 개인적인 견해는 후자 쪽이지만, 정답은 그 순간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었는가?’가 될 것입니다.

때때로 교회 안에서.. 우리의 가정을 포함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나 자신의 열심과 생각에 의한 행위는 그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불신자로 하여금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범법 행위는 분명히 법의 힘을 빌려 심판을 받고,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그러한 일들이 얼마나 발생할까요? 대부분의 문제는 상대방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덮으면 해결될 일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내 기득권과 유익을 침범한다는 이유로.. 얼토당토 않는 트집을 잡아, 공격하고.. 험담하고.. 잘못된 소문을 퍼뜨리고.. 파당을 조성하여 공동체를 공중분해 시키는 일을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심각한 일을 저지르고서도 자신이 한 행동을 의롭다 말하며 정당화시키고.. 하나님의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과연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시시비비를 잘 가렸다 말하겠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개독교라 욕하며,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멸종시켜야 할 대상이라고 비판할 것입니다. 전도의 문도 막히고.. 복음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아예 말도 하지 말고, 어떤 일에도 나서지 말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예전에는 그런 생각으로 거의 말하지 않으며 지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도.. 하나님의 방법도 아닙니다.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과 같은 상황만 놓고 본다면.. 기독교는 절대 흥왕하지 못하고 역사 속에서 사라졌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장 약한 자들이 믿고.. 모든 이들의 핍박만 받아왔던 기독교는 주후 313년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중세 시대는 교권이 황권보다 높았습니다. 오늘날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자주 넘어집니다. 그리고 자주 실수합니다.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는 기독교가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역사하셨습니다. 혹시라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으십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나를 신뢰하라. 나에게 지혜를 구하라. 내가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했던 사도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로마의 총독과 관료들에게도 복음이 증거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하루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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