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12 (새 542장 / 구주 예수 의지함이)
서론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의 삶 가운데, ‘이 세상엔 나 혼자 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외로움.. 고독감.. 두려움과 슬픔에 빠져 본 경험이 있으시지는 않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가끔씩 그러한 시간들을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그것은 우리를 고립시키고, 골탕 먹이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대일로 만나길 원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층 더 깊은 차원으로 사용하려고 하실 때에 그렇게 행하십니다. 혹시 어려움 가운데 있으신 분이 계시다면, 하나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본론
미디안은 사사시대 이전부터 이스라엘과 연관이 적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어린 요셉은 그의 형들에 의해 미디안 상인에게 팔려갔습니다. 모세는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 바로의 낯을 피해 미디안 땅으로 도망쳤고, 그곳에서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딸과 결혼하였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주변 국가에 위협이 되자, 모압 왕 발락은 미디안 장로들과 함께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발람을 부르기도 하지요. 특별히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 범죄 하여 미디안 손에 넘겨진 후, 이스라엘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상이 잘 드러나고 있는 부분입니다. 얼마나 비참한지는 11절을 후반부를 보시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기드온’이라는 사람이, 자신들의 주된 식량인 밀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방앗간이 아닌 포도주를 만드는 곳에서 탈곡 및 가공 작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디안 사람들에게 강탈당할 수도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기드온이 얼마나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때였습니다. 갑자기 여호와의 사자가 그 앞에 나타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기드온이었다면, 어떠한 반응을 보이셨겠습니까? “아이고, 주님.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 제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눈치 보며 살았는지 아세요? 오늘 같은 날이 오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라면 이렇게 했을 것도 같은데,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기드온은 신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두 가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본문 13절과 15절이 바로 그것인데요, 간단명료하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이스라엘의 운명은 왜 미디안의 손에 좌지우지 당하는가?”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작은 나를, 왜 큰 용사라고 부르시는가?”입니다. 사실 미디안은 이스라엘을 흔들 수 있는 정도의 힘을 가진 민족은 아닙니다. 이후에 나오지만 기드온의 한 방에 의해 정리될 만큼 약한 민족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미디안에 꼼짝도 못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죄악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가 도를 넘으면, 우리 보기에 별 것도 아닌 일에 넘어지고 고통 받게 하십니다. 작은 가시가 목에 걸려 숨조차 쉬기 어려운 상황을 겪게 하는 것이지요. 날마다 하나님 앞에 겸비함으로 우리 가운데 이와 같은 일이 생기지 않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질문에 사실을 말씀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너희가 미디안의 손에 넘기어진 것은 너희의 죄악이 심히 과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를 격려하기 위해 큰 용사라고 부른 것이니 오해하지 말아라.” 만약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말씀하신다면,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매정하신 분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그러한 분이 아니시지요. 그 분의 주된 성품은 ‘사랑’입니다. 때문에 기드온의 조상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죄를 저질렀는지.. 객관적인 기드온의 수준에 대해서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니, 너는 두려워 말고 저 미디안 족속들을 한 방에 없애 버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은 반응은 비단 기드온뿐만 아니라, 우리를 향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무리 많은 죄를 지어도.. 오랜 동안 하나님을 떠나 내 마음대로 살다가도.. 회개하고 그 분 앞에 나아가면, 거절하지 않고 사랑으로 안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식이나, 권력이나, 재산이 많이 있을 때만 사용하실 것 같지만, 오히려 가장 연약하고 힘이 없을 때 부르십니다. 요셉, 사무엘, 다윗, 예레미야 등이 그러했지요.
자신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해, 기드온은 그 여호와의 사자에게 징표를 요구합니다. 예물을 드릴 테니 기다렸다가 잘 받아 달라는 것이었지요. 그리고는 음식을 준비합니다. 이 본문 외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의 내용이 나오는 성경 말씀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음식을 접대함으로써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인지.. 그냥 평범한 사람인지를 판별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축복하며 점잖게 먹고, 평범한 나그네라면 감사해하며 허겁지겁 먹을 것이고.. 하나님의 사람을 사칭한다면, 이것저것 다른 것을 요구하거나 할 것입니다. 그런데, 기드온 앞에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음식을 불살라 한 번에 사라지게 하고, 자신마저 사라져 버렸습니다. 기드온의 예상을 벗어났던 것이지요. 기드온의 생각엔 이 여호와의 사자가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드린 예물을 받는 모습을 보니 단순한 여호와의 사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 것입니다. 때문에 22절에서 기드온은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라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면 반드시 죽게 된다는 사실을 모세 때부터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안심하고 두려워 말아라. 네가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이 얼마나 큰 안심이 되고, 감사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원래대로라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하나님의 그 거룩하심 때문에 모두 죽어야 합니다. 모세가 됐든, 이사야가 됐든.. 아무리 우리 보기에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똑같은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시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는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는 성경 66권 그 어디에도.. 지난 2000년의 기독교 역사 가운데에도..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만나신 적은 단 한 번 없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는, 놀랍도록 하나님의 쓰임을 받았습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께서 어느 누군가를 만나실 때에는 “큰 용사여, 내가 너를 사용할 것이다.”라는 말씀을 주시고, 그 사람을 높이 쓰시려는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길 소망하십시오. 그래서 높이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많은 신학자들과 설교가들이 기드온을 과도한 소심장이에, 비겁한 사람으로 설명합니다. 그 이유는 므낫세 지파가 작은 지파이긴 해도, 기드온의 집안은 부유하고 영향력이 많은 집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함에도 자신의 집안을 폄하하듯이 말하고,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기에 기드온에 대해서 소심하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에서도 그러했지만, 계속해서 징표를 구하는 그의 모습 속에서 소심함을 엿볼 수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당시 미디안에 의해 소유물을 자주 강탈당하던 시대적 상황..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집안에서의 기드온의 위치.. 이 모든 것을 고려해본다면, 소심해 보이기까지 한 그의 성격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기드온 스스로가 느끼기에 가장 연약하고 낮은 위치에 있을 때, 그를 만나시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도록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혹시 그 어느 때보다 더 무력감과 고독감.. 그리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분이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을 ‘큰 용사’라 부르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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