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17 (새 312장 /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서론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에 의해 받은 고통을 그 이상으로 돌려주게 되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후세들에게까지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느 한 쪽에서 용서를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께 맡겨야 하지요. 그래야 내 자신이 더럽혀지지 않고, 자유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또한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원한을 갚기 위한 복수를 하기 까지는, 늘 지옥에서 사는 것처럼.. 미움과 증오가 가득한 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오로지 복수의 칼날만 갈며 살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마음 속은 어떠하십니까? 혹시 누군가를 열렬히 미워하고 계시다면..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닌, 여러분 자신을 위해 용서하며 평안한 마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론
기드온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단 삼백 명의 군사로 12만 명을 죽게 하였습니다. 물론.. 적군은 여전히 삼십 배 이상 많은 만 명의 군사들이 아직도 남아있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히려 기드온과 삼백 명의 용사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소심하기까지 보였던 기드온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남은 만 명의 적군을 소탕하기 위해 뒤쫓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 사용하시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세상에서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사람을 부르시어, 큰 일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연약한 자를 들어, 지혜 있다 하는 교만한 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하는 것이지요.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아무리 대승을 거두었다고 하나 삼백 명의 군사가 만 명을 대적하지 않습니다. 꽤 오래 전에 상영되었던 ‘300’이라는 영화에서는 300명의 스파르타 군사가 거대 신흥국가인 페르시아를 대적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죽기를 각오한 대다 철저하게 훈련된 군인들이었습니다. 기드온의 삼백 용사와는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지요. 참모 중에 ‘제갈공명’같은 책사가 있었다면. 이 때를 틈타서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라고 얘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역사를 경험한 기드온은 이미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적군들을 바라보며 뒤로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자세로 섬멸 작전에 돌입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이전의 삶은 너무도 수동적이고.. 소심하게 보일 정도로 위축된 삶을 살았던 기드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새벽에도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가능하다면, 매일매일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은 열심히 미디안 군대의 패잔병들을 추격한 결과, 미디안의 왕인 세바와 살문나를 붙잡게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도중, 숙곳에 들러 그 지역의 방백들과 장로들 칠십 칠 명.. 성읍의 사람들을 죽이고, 브누엘의 망대까지 헐어 버립니다. 언뜻 잔인한 것 같고.. 무자비 한 것 같지만.. 사실, 온순한 편인 기드온이 이렇게 반응한 데에는 모두 이유가 있습니다. 본문 앞에 4절을 보시면,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뒤.. 잔당을 뒤쫓는 과정에 있어서, 기드온과 삼백 용사들은 모두 피곤하고 지친 상태에 배까지 고픈 상태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밤을 새서 기드온이 모이라는 곳에 모이고.. 하루 종일 선별 과정을 거치고.. 잠시 쉴만한 가 싶더니, 미디안을 쳐부수기 위해 출진하고.. 밤 새워 싸웠는데, 확실한 마무리 차원에서 미디안의 왕을 붙잡으려고 그 뒤를 쫓고.. 최소 이틀 밤을 잠도 못자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계속 따라간 것입니다. 그래서 가는 길에 숙곳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도록 요청하였지요. 그런데 그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너희가 아직 미디안 왕을 잡지도 못했는데, 우리가 뭘 믿고 너희에게 곡식을 주겠느냐?” 이들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미디안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반응을 보인 것이지요. 행여라도 미디안이 군사력을 회복해서 돌아오면,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숙곳 사람들의 믿음 없는 반응이었습니다.
숙곳은 여호수아 13장 27절에 의하면, 갓 족속에게 분배된 땅입니다. 다시 말해, 기드온은 남이 아닌.. 다른 민족이 아닌, 자신의 동족에게 부탁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설령 보복이 두렵다 하더라도, 동족의 부탁을 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게다가, 이들 역시 12만 명의 적군을 죽이고 대승을 거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이나.. 하나님께서 동행하고 계시다는 것도 모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부탁에 반응하지 않았다는 것은,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보다 힘없이 도망가는 미디안의 왕을 더 두려워했다는 얘기입니다. 기드온은 어떨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용서할 수 없는 부분인 것이지요. 때문에 기드온 안에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를 품고, 같은 편이지만 같은 편이 아닌 숙곳과 브누엘을 응징한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분별력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없었기에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먼저는 분별력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도록 간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분 스스로 친히 택한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에, 여러 동역자들을 구하게 하십니다. 그 때에, 여러 가지 핑계로.. 자신에게 위험 부담이 있고,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반응하지 않게 되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축복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부흥의 때에 주역이 아닌, 주변인으로 남게 되고.. 심한 경우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징계나 심판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에 이와 같은 일이 생겨나지 않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바와 살문나는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괴롭게 하고, 죽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죗값과 피 값으로 사형에 처하게 됩니다. 본문 19절에서 기드온이 미디안 왕을 향해 “너희가 만약 내 동족을 죽이지 않았으면, 나도 너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구약의 법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생명은 생명으로’였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보복이나 복수가 아니었던 것이지요. 단지 이 말씀을 가지고서, ‘기드온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힘을, 자신의 원수를 갚는 것에 사용했다.’라고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겁도 없이 괴롭히고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용납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가 어디에서 맞고 들어오거나.. 누군가에 의해 매일 괴롭힘을 당한다면, 여러분들은 가만히 계십니까? 아무리 망나니 같은 자녀라 해도, 자녀가 어려움을 당하면.. 상대가 엄청난 거물이라 해도 득달같이 달려가서 갚아주려 하는 것이 부모된 마음입니다. 하물며,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우리가 각자의 죄로 인해 그 대가를 치룰 때 치루더라도.. 우리를 괴롭히는 상대를 심판하시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받은 것만큼, 그 이상으로 돌려주시는 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무어라 말씀하셨습니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축복할 것이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할 것이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이 저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하신 것임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을 괴롭히는 그 대상들을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하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 따라 한 순간도 지체함 없이 움직여왔던 기드온은, 아쉽게도 ‘옥의 티’를 남겼습니다. 그것은 적군의 왕인 세바와 살문나가 타고 다니던, 낙타 목에 있는 초승달 장식들을 떼어간 것입니다. 후에 이것은 우상숭배의 원흉이 되어, 기드온과 그의 집을 올무에 빠지게 합니다. 기드온은 왜 이와 같은 행동을 했을까요? 그것은 그의 안에 자신의 업적을 치하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대의 전쟁에서 전리품을 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기드온의 행위에는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삼백 명의 병사로 미디안 연합군 13만 5천명을 물리친 것이, 100퍼센트 기드온의 능력이었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방해가 되었던 인물입니다. 왜냐하면, 시대적 상황과 기드온의 위치를 고려했을 때, 충분히 이해는 된다지만.. 그가 세 차례 징표를 구하는 짓만 안했어도, 최소 반나절에서 하루 정도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기드온은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제동을 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무언가 하나님을 위해 선한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필요한 능력과 은사들을 주시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감사하고 황송한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내어드려야 하는 것이지요. 혹시 여러분들 안에,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그 마음을 철저히 깨뜨리시고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인정받기를 포기하고,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낮출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 없이 높이시는 일들을 경험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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