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6일 새벽설교 (새 569장 /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서론
1726년 영국의 작가인 ‘조나단 스위프트’ 씨의 작품 ‘걸리버 여행기’를 아실 것입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도 많이 제작되었었기 때문에.. 책이든 영화나 만화든.. 한 번 이상은 보셨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890년대 초.. 윤치호 씨에 의해서 처음 번역되어 소개된 작품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화책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책이 쓰여질 당시의 영국 정치계와 과학계를 신랄하게 비판한 풍자 소설이었습니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1부는 15센티미터 미만의 소인국에 포로로 잡히면서 생긴 에피소드입니다. 그곳에서 주인공 걸리버는 초대형 거인과 다름이 없어서.. 옷을 해 입거나, 음식을 먹을 때와 같은 일상생활에서..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을 가져다주어도.. 소인국 사람들의 기준에서는 크기와 규모가 어마어마한 것이지요. 상상을 초월하고, 예측을 뛰어넘는 부분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물론 소설 속의 이야기였지만.. 실제로, 우주보다 크고.. 그 어떠한 것보다 놀라우신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누군가가 가늠하려 하고.. 제한을 두려고 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고 미련한 짓이 없을 것입니다. 바라기는, 그 위대하신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기에 힘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론
오늘날.. 전반적으로 기술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크기와 규모와 기능면에서.. 사람들은 점점 어마어마한 것을 개발해내고 있습니다. 하늘에 닿을 것만 같은 수백 층의 빌딩을 건설하고.. 전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비행기는 물론, 다른 행성까지 다녀올 수 있는 우주선을 만들어내는 중입니다. 또한 지도에서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거나.. 단번에 수백 만 명을 살상할 수 있는 무기들이, 오래전부터 개발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가하면, 일상생활에 편의를 돕는 각종 로봇 제품들이 출시 중이고..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체스나 바둑을 잘 두는 인공지능도 사용되고 있지요. 심지어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것만 같은 가상현실도 상용화되고 있는 중입니다. 이외에도 각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과 발달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만들어진 제품과 만들어내는 사람 중에.. 어떤 것이 더 위대하고 뛰어난 것입니까? 인공지능이나 로봇에 밀리는 것 같아 보여도.. 그것을 만들고 제어해내는 인간이 당연히 훨씬 뛰어난 존재인 것이지요.
이와 같은 관점에서 하나님을 생각해 볼 때에.. 그분의 높고 위대하심은,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는 범주의 것이 아님을,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이 보좌이고.. 땅은 발판이기에, 그 무엇도.. 그 어디도, 하나님께서 머무실 수 있는 처소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이지요. 더군다나..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만들지 않은 것이 없으신데, 그중에 어느 한 곳에 머무르시도록 장소를 제공한다면.. 상당히 어이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애초에 성막이나 성전을 만들게 하셨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 함께 계심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일종의 상징물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며.. 지은 죄를 용서받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다른 우상들처럼 성전에만 계시고.. 세상에는 없으신 분으로 생각한 것이지요. 그 결과, 거짓되고 위선적인 제사와 형식적이고 외면적인 신앙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자들은 구원하시고, 외식하며 형식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심판만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시대가 아무리 악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 대한 핍박이 강경하게 진행된다 하더라도, 완전히 씨가 말라버릴 정도로 되어지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남은 자들이 있는 것이지요. 북 이스라엘 아합 왕 때에.. 그는 왕비 이세벨과 함께, 나라 안의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을 제거하였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하나님을 경외했던 아합 왕의 신하 오바댜는 선지자 백 명을 숨겼고..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 천 명의 사람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사도 바울이 활동하던 시기의, 로마 제국 네로 황제 때에는 어떻습니까?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을 잃지 않았습니다. 지하 공동묘지라 할 수 있는 ‘카다콤’ 같은 은밀한 곳에서 모여.. 예배드리기에 힘썼습니다. 그들이 환난과 고통 중에도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실 구원과 위로와 평안과 안식을 믿어서 입니다. 동시에, 부활 소망을 가지며.. 하나님을 부정하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악인들이, 반드시 심판받게 될 것임을 확신하였기 때문이지요.
이에 대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들과.. 그 반대로 대적하는 무리들이 겪게 될 결말에 대해서,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진실 되게,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무시와 조롱과 불이익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반대로 불의한 사람들은.. 약하고 힘없는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믿음의 사람들을 핍박하며.. 성공적인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요. 그러한 순간들만 보면, 하나님께서 잠자코 계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행위를 아시기에.. 악인들의 번영과 형통함을 방관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불의한 세상 사람들에 의해 고통당하는 것을 그냥 두지 않으시지요. 때가 차고, 여호와의 날이 임하였을 때..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시되,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셔서.. 의인에게는 구원과 영생의 복을, 악인에게는 멸망과 영원한 벌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어떠한 상황에도 그분을 신뢰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이지요.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을 보시면.. 우리를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닌 평안이고,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기쁨과 위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은혜를 준비해 놓고 계시지요. 비록 현실적으로는 환난과 고통.. 슬픔과 낙심이 가득하신 상황을 겪고는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위로와 격려와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 때에 우리는.. 제한적이더라도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오늘 하루도 소망 중에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시편 68:1-18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 (2) | 2023.01.19 |
---|---|
시편 67:1-7 '넘치도록 은혜 주시는 하나님' (0) | 2023.01.19 |
시편 63:1-11 '평안함의 근거' (0) | 2023.01.03 |
이사야 66:15-24 '여호와의 날' (0) | 2023.01.03 |
이사야 62:1-12 '새로운 부르심' (0) | 2022.11.13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