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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6:15-24 '여호와의 날'

설교방/새벽 설교

by JJ family 2023. 1. 3. 12:33

본문

2021년 8월 17일 새벽설교  (243/ 저 요단강 건너편에)

서론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특정 영화나 드라마.. 혹은 스포츠 경기가 있으십니까? 사정이 생겨서 라이브로 시청하지 못하고.. 재방송을 봐야하는 상황인데,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함과 기대감 속에서.. 빨리 본인만의 자유시간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지요. 그런데 먼저 관람을 해서 과정과 결과를 아는 어떤 사람이.. 지나가면서 내가 보고자 하는 영상의 내용에 대해 얘기해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스포일러라고도 하는데.. 그 순간 여러분들은 어떠한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겠습니까, 아니면 아무 얘기도 하지 못하도록 저지 하겠습니까? 개인적으로는, 가급적이면 그 줄거리를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긴장감이나 기대감이 줄어들 확률이 높아서.. 그 영상을 감상하지 않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너무나도 재미있게 이야기를 해주게 되면.. 오히려 더 큰 기대감을 갖게 되어서, 속히 보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질 것입니다. 물론 긴장감은 떨어졌겠지만, 대신 불안해하지 않고.. 안심하며 볼 수 있게 되겠지요. 세상 만국을 심판하게 될 여호와의 날에 대한 내용을 접할 때마다.. 여러분들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바라기는, 두려움과 떨림이 아닌.. 기대함과 평안함이 가득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론

오늘은 이사야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사야는 성경의 축소판.. 요약판과 같다고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목록 전체가 66권인 것처럼.. 이사야도 66장까지 있고,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의 분위기가 다른 것처럼.. 이사야도 39장까지의 분위기와 그 이후 40장부터 66장까지의 분위기가 완전 다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사야 66장은 요한 계시록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지요. 그것은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날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에 대한 심판과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들을 향한 구원..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것에 대한 계시입니다. 마치 이사야 66장이 요한계시록을 집약하고 있는 것처럼.. 병행본문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가 분명히 서로 다르고, 이사야가 기록된 지 수 백 년이 흐른 다음에야 계시록이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내용이나 주제에 있어서 유사점을 보인다는 것은,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을 제공합니다. 성경이 진정으로 한 분 하나님의 감동에 의해 쓰여졌다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상황에도 변개함 없이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셔서..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심판과 구원에 대한 메시지가 교차적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날이 임하면.. 여호와께서 불에 둘러싸여 강림하실 것입니다. 수레들은 회오리 바람 같을 것이고.. 맹렬한 화염으로 책망하실 것입니다. 모든 혈육을 대상으로 불과 칼로 심판을 베푸셔서.. 죽임을 당할 자가 무수히 많게 될 것이라 말씀하고 있으시지요. 이와 같은 조짐이 보이거나.. 그 광경을 목격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기 차례가 오기 전에.. 재빨리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그들을 세계 곳곳으로 복음 전도자로 보내셔서, 여호와의 영광을 전파하도록 하실 것임을 선언하고 계시지요. 그러면, 택함 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각기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나아와서 여호와께 드리게 될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이지요. 구원의 대상과 범주에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훌쩍 넘어서게 됨을.. 선민이라 자부하면서 구원이 자신들에게만 있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잘못된 개념과 정의를 완전히 부수고 계신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이방인들 중에서도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신다는 것이지요. 더 이상 혈연에 의해 예배 섬김이들을 세우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신약 시대에 성취되어서.. 오늘날에까지 그 은혜가 이어지고 있지요.

이쯤에서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성경에는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심판과 구원에 대한 말씀이, 다양하게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말씀을 읽거나, 설교를 들으실 때에.. 여러분들은 어떠한 마음과 생각이 들게 되십니까?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그러시면서, 무슨 걸핏하면 심판하신다고 그러시지? 분노조절장애가 있으신가?’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으십니까? 혹은 여호와의 날이 임하였을 때.. 과연 내가 구원받을 수 있을까? 심판의 대상이 되면 어떻게 하지?’ 이와 같은 불안한 마음을 갖고 계신 분이 있지는 않으십니까? 우리가 이와 같은 말씀을 접할 때마다.. 보여야 할 건전한 반응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심판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자신의 삶에 회개할 부분이 없는지 자아성찰 하면서, 가족이나 지인 중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여 주신, 그래서 여호와의 날에 심판의 대상이 아닌.. 구원받을 자가 될 것에 대해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성경 곳곳에서 등장하는 심판의 메시지에 대해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온 땅에 충만하라는 사명을 주셨을 때에,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만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먹으면, 죽게 될 것이라 하셨지요.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려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권세를 가진 아담이, 스스로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겸손함을 유지하면서 축복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에.. 이후 모압 평지에 있는 에발산과 그리심산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할 때에..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를 하고.. 율법이 아닌 소견대로 살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곤경에 빠트리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지요. 축복과 저주의 삶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여 주신 것은.. 단 한 사람이라도, 저주의 길을 택해서 자멸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십니다. 그분의 모든 백성들이.. 축복의 길을 선택해서, 자자손손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가게 하려는 것에 목적이 있으셨던 것이지요.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언제 여호와의 날이 임하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선교학계에 의하면.. 아직까지 10~15억 정도의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지지 않아서, 시간이 아직 많이 남은 것처럼 생각되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명과 기술의 발달 속도를 보았을 때.. 앞으로 수년이나 수십 년 안에, 최후의 날이 임하는 기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살아 있을 때에.. 주께서 이 땅 가운데 재림하시는 모습을 목도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꼭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부지불식 간에 개인적 종말을 맞이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지요.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예배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주변 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며..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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