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 V국 현지 신학교 채플 설교
서론
인도 동북부 지역에 ‘방글라데시’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미얀마와 국경이 조금 맞닿아 있는 나라이기도 하지요. 그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국제연합인 ‘UN’에서 해마다 조사하는 국가별 행복지수에서 1위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비록 몇 년 전의 조사이기는 하지만, 서양의 여러 선진국과 복지 국가를 누르고, 행복함을 가장 많이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지요. 그런데 여기에는 그럴만한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만 말씀드린다면, 자신들이 살아가는 인생의 방식이 전부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다른 사람들도 모두 동일하게 자신들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지요. 그런데, 인터넷이 보급되고,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이것’을 보게 되면서 그들의 행복지수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유튜브’입니다. 유튜브를 통해 다른 나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이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눈을 들어 세상 사람들과 비교해 보니, 만족하며 살아갔던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쓸데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본론
오늘 본문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여호수아는 어떠한 사람입니까? 한 단어로 말한다면, ‘용사’ 또는 ‘영웅’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출애굽한 이후에 이스라엘이 하게 된 모든 전투에서 항상 앞장섰습니다. 그 누구보다 선두에 서서 적군과 맞서 싸웠던 것이지요. 가나안 정탐을 할 때에는, 동료 갈렙과 함께 긍정적인 평가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우리는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당당하고 용감한 사람이었는데..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서는 전혀 그러한 부분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그것은 바로 얼마 전까지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모세 때문이었던 것이지요.
모세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다시 없을 사람입니다. 그는 시내산에서 80일 동안 하나님과 매우 친밀한 교제를 가졌고,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받았습니다. 구약과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언약 중의 하나인 시내산 언약을 맺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온유함은 이 땅에서 가장 높았고, 그의 형 아론과 애굽의 바로 왕에게는 하나님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모습을 목격한 유일한 사람이었지요. 여호수아도 대단한 사람임에는 분명하지만, 모세와 비교하면 한참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이전의 지도자와 비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뛰어난 정도가 일반적인 수준이었다면, 여호수아도 그를 롤모델로 삼아 백성들을 지도할만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떠한 노력을 해도 모세처럼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 부족하게 느껴지니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는 세 가지 말씀으로 격려를 하고 계십니다.
첫째,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서 3번이나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4개의 구절 중에서 8절을 제외한 3개의 구절에서 연속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셨겠습니까? 그 누구보다 강하고 담대하게 전쟁에 나섰던 여호수아였습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항상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모세와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무너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나는 절대로 모세처럼 할 수 없는데, 앞으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가지? 조금이라도 잘못하거나 실수하면, 수백만 명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을텐데.. 내가 모세의 발끝만큼이라도 할 수 있을까?’ 자신도 모르게 모세와 비교하면서.. 자신을 깎아내리는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가 본래 가지고 있던 기질(특성)을 다시 기억하고 회복하도록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호수아야, 넌 본래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다. 내가 너를 그렇게 창조했다. 그러니 사탄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말아라.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다시 회복하거라.” 모세와 자신을 비교하고.. 수많은 백성들을 인도해야 하는 상황을 걱정하고.. 그러다보니, 본래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순간적으로 잊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에게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 했고.. 그 땅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했습니다. 비록 그가 존경하고.. 닮고 싶고.. 섬겨왔던 모세가 더이상 함께 하지 못함으로 큰 슬픔이 있었겠지만,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뒤를 이어 백성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겠지만,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었던 여호수아였습니다. 따라서 본래의 강하고 담대한 모습을 회복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했던 것이지요.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근거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힘과 능력을 주고, 다시 살아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상한 심령을 치료하시고, 때로는 육체의 질병까지도 낫게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 이유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철학과 사상과 종교는, 인간에게 어떠한 힘도 주지 못합니다. 약간의 위로는 줄 수 있겠지만, 죄로 가득한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학문과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지요. 세상은 인간 스스로 어느 정도 노력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계 4대 성인 중의 3명인 소크라테스.. 공자.. 석가모니처럼, 노력의 정도에 따라 특별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신’이 될 수 있다 주장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것을 증명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에 그들의 주장은 하나의 듣기 좋은 소리일 뿐, 실상은 거짓말 혹은 사기나 다름이 없는 것이지요.
이렇게 세상은 ‘신’에 대해서 이야기는 하지만, 실제 존재하는 신은 ‘하나님’ 이외에는 없습니다. 인간이 열심히 수행을 하고, 지식을 쌓고, 도덕적인 삶을 살게 되면.. 신이 될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 세상의 학문들이고 종교인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실존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말씀입니다. 따라서 그분의 말씀을 따르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게 되면, 성경에 기록된 모든 약속들을 우리의 인생 가운데 이루어 주시는 것이지요.
셋째,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렵고 놀라는 마음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바로 사탄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주는 것이지요. 두려움만 놓고 보았을 때는 긍정적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판검사나 경찰을 두려워하는 것.. 선생님을 두려워하는 것.. 이러한 종류의 두려움은 우리가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하지만, 놀라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놀라는 순간은, 무언가 좋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는 무언가 생각하다가 자기만의 세계에 집중해 있을 때에, 다른 사람이 장난을 하면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두려움과 놀라는 것’이 동시에 발생한다? 이것은 한 마디로, 특정 상황과 환경을 바라보는 경우에 일어나는 상황입니다. 사고가 날 뻔한 경우.. 귀신이 나올 것 같은 환경.. 심각한 죄를 지은 상황.. 이와 같은 때에 두렵고 놀라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도 하나님만을 바라보기 원하십니다. 오직 주님께만 집중하기 원하십니다. 뒤돌아 보지 말아야 하는 것이지요. 주변의 상황과 환경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는지.. 혹은 사탄의 속임과 유혹으로 환경과 상황을 보고 있는지.. 그것을 통해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점검하고,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주님만 바라보고 있다면, 높은 산이 가로막고.. 많은 물이 삼키려 하고.. 큰 불이 태워버릴 듯한 상황이 다가와도, 두려워하거나 놀랄 일이 없는 것이지요.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로 세워진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세 가지 격려는..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사명을 받은 자.. 특별히 리더로 세움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오늘의 세 가지 명령을 기억하여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 죄인이고.. 부족함과 연약함이 많은 사람입니다. 두렵고.. 떨리고.. 놀라고.. 자신감이 떨어지고.. 열등감과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아무 숨김없이 우리 각자의 모습대로 서야 하지만, 하나님을 위해 나아갈 때는 하나님만 바라보면 되는 것입니다. 이 간단한 구조를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강한 용사’로 하나님께 쓰임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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