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7일 V국 현지 신학교 채플 설교
서론
19년전쯤, 제가 중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할 때였습니다. 저는 한국어와 영어를 가르치는 어학원에서, 행정 업무를 보았습니다. 어학원의 교사들은 전부 선교사들이었습니다. 한국인 선교사들과 미국, 영국, 캐나다 등에서 오셨던 선교사들이 함께 사역했습니다. 그때 당시, 한국인 선교사님이 운영하시는 신학교와 연결된 곳이 있었습니다. 중국 현지 신학생들은 영어를 배웠었고, 수업을 통해 친밀감이 생긴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저는 행정적인 일을 하다 보니, 신학생들의 학원내 활동을 위해서, 대화할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가끔은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신학생들의 특징이 있었습니다. 어깨는 움츠려 있고, 상체는 구부정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자신감이 매우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분위기가 기독교와 교회를 핍박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자신감 없는 행동과 모습이 나오게 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중국처럼 기독교를 금기시하는 베트남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주 안에서 온전한 자존감을 갖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본론
오늘의 본문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는 말씀입니다. 1장 1절의 말씀을 보시면, 예레미야는 원래 제사장 가문의 자녀였습니다. 그리고 1장 2절을 보시면, 예레미야가 부름을 받았던 때는, 요시야 왕이 다스린지 13년 되던 해였습니다. 역대하 34장 3절에 의하면, 요시야 왕이 나라 안의 모든 우상들을 제거한 지 다음 해입니다. 또한 성전을 수리하다가 모세의 율법책이 발견되기 5년 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히스기야 왕 이후에 므낫세 왕과 아몬 왕이 완전히 망쳐 놓았던 나라를, 어느 정도 회복시키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요시야 왕은 여덟 살에 즉위할 때부터,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다윗의 길을 갔습니다. 때문에, 예레미야는 하나씩 하나씩 나라의 기틀을 새로이 세워나가는 요시야 왕을 바라보면서, 밝은 미래를 상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 6절에 보시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나는 아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문자적으로 아직 성인이 안 된 어린 아이여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당시 예레미야의 나이는 20세에서 23세 사이였을 때입니다. 여러분들과 비슷한 나이였던 것입니다. 절대로 아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예레미야는 이와 같은 답변을 했는가? 그것은 그의 집안 배경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예레미야는 제사장으로서 몰락한 가문의 자녀였습니다. 1장 1절에 예레미야의 아버지로 언급되는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는 요시야 왕 시대에 모세의 율법책을 발견한 ‘대제사장 힐기야’와는 다른 인물입니다. ‘아나돗’은 베냐민 지파의 땅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동북쪽으로 5km정도 떨어진 지역이지요. 그곳은 다윗 왕 때 대제사장이었던 아비아달의 고향이었습니다. 그의 조상은 사무엘을 양육했던 엘리 제사장이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불경건한 그의 두 아들 때문에 저주를 받았었습니다. 한 마디로, 예레미야는 엘리와 아비아달의 후손으로.. 제사장 직분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쇠퇴한 가문의 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이 예레미야에게 있었던 것이지요. 따라서 ‘나는 아이입니다.’라는 예레미야의 대답은, 겸손이 아니라 자신감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사용하시는 부분에 있어서.. 낮은 자존감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를 본문에서 3가지 정도 찾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임신이 되기 전부터 너를 알았다. 네가 세상으로 나오기 전부터 거룩하게 구별하였다. 그래서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우는 것이다.”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계셨고,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하였고, 그분의 통치 아래에 있습니다. 그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시고, 불가능한 일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특별히 하나님께서 ‘알다’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몇 개의 정보나 지식을 가지고 있을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생각, 성격, 과거와 현재와 미래 등등..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것을 아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부족한 모습들만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전체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더 자세하게 아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구별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동역자로 세우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만 바라보며 나아가면 되는 것이지요.
둘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라와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쉬운 곳은 없습니다. 목사든, 선교사든.. 어디를 가도 환영받지 못 합니다. 수많은 거절과 무시.. 조롱과 박해를 상대해야 합니다. 몇몇 나라에서는 생명을 위협받기도 합니다. 베*남은 어떻습니까? 이 나라에서 목사로 사역하는 것이나.. 선교사로 활동하는 것이 쉽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드러내지 않고 조심하면서 진행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나 선교사들은 점점 활동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너무도 힘든 길을 선택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신학을 공부하는 중이고, 저는 여러분에게 가르치고 있지요. 이것은 사실 불법적인 일입니다. 공안들이 알면, 아마도 여러분들은 잡혀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한국으로 추방당해서 다시는 베트남에 들어오지 못하겠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어떠함 때문에 거절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예수님 때문에 받는 고난들입니다. 우리의 자존감이 낮아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구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이나 여러 믿음의 선배들처럼, 우리가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이지요.
끝으로, 우리에게 있는 낮은 자존감이나 열등감이 아무 문제 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착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하면, 그 어떤 선한 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죄가 많은 인간이기에, 악하고 나쁜 것만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일은 신기한 부분이 있습니다. 내가 주도적으로 하려는 순간부터,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게 됩니다. 사람의 일.. 나의 일이 되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 9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입에 두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넣어주신 말씀을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의 긍정적인 효과는, 누군가 우리의 복음 전파나 설교를 거부한다 하더라고.. 상실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말이 거절 당하여도..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거절 받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10절에서는, 여러 나라 위에 우리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 세상 나라들을 뽑고, 파멸하고, 넘어 뜨리거나.. 건설하고, 심으시겠다고 하십니다. 세상 나라의 통치권과 심판권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그러한 능력과 권세를 주신다는 것이지요. 결국 우리 스스로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면.. 그 어떠한 것에도 우리의 자존감이 무너질 일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데도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높은 자존감을 가지는 이유는,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만큼 열심히 해서 실력이 있거나, 머리가 뛰어나게 좋거나.. 인 것이지요. 반면, 우리의 모든 근거는 오직 하나님께만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인이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죄성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해결책을 우리 안에서 찾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의 노력으로 하나님에게서 찾아야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나에게 어떠한 평가를 하고 계시는가? 그분은 우리를 위해 어떠한 일을 행하셨는가? 이러한 부분을 깊이 묵상하고 깨달아 안다면, 여러분들을 괴롭히고 있는 열등감의 문제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지금은 ‘아이’와 같은 모습이지만, 하나님 안에서 여러분의 올바른 정체성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반응하여, 예레미야처럼 귀하게 쓰임받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수아 1:6-9 '자존감 회복하기 ③: 너는 강한 용사라' (1) | 2024.11.22 |
---|---|
출애굽기 4:10-17 '자존감 회복하기 ②: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라' (2) | 2024.11.15 |
예레미야 1:4-10 '감사(2): 나를 부르심에 감사' (0) | 2023.03.27 |
데살로니가후서 2:13-14 '감사(1) : 날 구원하신 주 감사' (1) | 2023.03.25 |
요나 4:1-11 '요나 ④: 하나님의 마음 알기' (0) | 2023.03.13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