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5일 새벽예배 (새 264장 / 정결하게 하는 샘이)
본론
사람들이 사용하는 욕 가운데에서 가장 심한 욕이 있다면, 그 중에 하나는 바로 ‘창녀’라는 욕이 될 것입니다. 심지어 실제로 몸을 팔아 돈을 버는 여인들도.. ‘창녀’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그 단어는 상대방의 자존감을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비하시키고, 수치심을 안겨 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단어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사용하고 계신 것입니다. 함께 본문 35절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너 음녀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음녀’ 다른 말로 ‘창녀’라고 하시는 이유는.. 그들의 영적 간음 때문입니다. 이후의 말씀에도 살짝 언급되고 있듯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유다 백성들이.. 곳곳의 산당들과 푸른 나무 아래 같은 곳에서 우상 숭배를 하였습니다. 그 중에는 자녀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것과 같은..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가나안 종교도 서슴지 않고 숭배하였습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본문 45절에서 47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읽으며 확인해 보도록 하시겠습니다. “너는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 어머니의 딸이요 너는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 형의 동생이로다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며 네 형은 그 딸들과 함께 네 왼쪽에 거주하는 사마리아요 네 아우는 그 딸들과 함께 네 오른쪽에 거주하는 소돔이라 네가 그들의 행위대로만 행하지 아니하며 그 가증한 대로만 행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적게 여겨서 네 모든 행위가 그보다 더욱 부패하였도다” 유다 백성들의 죄악이 얼마나 심했는지.. 어머니는 헷 사람,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 형은 사마리아, 아우는 소돔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헷 족속은 수없이 많은 신들을 섬겼습니다. 아모리 족속은 헷 족속만큼은 아니지만, 여러 우상을 섬겼습니다. 한 가지 주의할 부분은, 여호수아가 고별 설교를 할 때.. 하나님과 아모리 족속의 신들 가운데 신앙을 택하도록 강권했던 일입니다. 아모리 족속의 우상들이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당시 아모리 족속은 국력이 강했기에.. 상대적으로 많은 주변 국가들이 이들의 신을 섬기려 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마리아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수도로 혼합주의 종교의 아이콘입니다. 소돔은 성적 타락으로 심판받았던 도시였지요. 기억해야 할 것은, 사마리아도 앗수르에 의한 정복이후 혼혈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선민의식으로 남다른 프라이드를 갖고 있는 유다 백성들을 향해.. 이방 민족들보다 더 더럽고 추악하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 어느 민족보다 거룩하고 정결하다 생각한 유대인들로서는.. 들을 귀가 있었다면, 충격적인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죄의 고착화 상태가 어찌나 심했는지.. 그것을 심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두렵기 조차 합니다. 본문 37절에서 41절에 이르기까지 기록이 되어 있는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주위의 모든 민족들이 벌거벗겨진 채로 수치스럽게 포로로 끌려가는 유대 민족들을 지켜보게 될 것이고.. 모세의 율법에서 간음한 여인이나 살인한 여인이 받게 되는 형벌들 받게 될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에게 안정감을 주었던 모든 집들.. 성전과 산당들은 모두 부서지고, 아름다운 장신구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빼앗겨질 것입니다. 이방 민족들은 쳐들어와서 돌을 던지고.. 칼로 찔러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게 될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그런 심판입니다. 완전 초토화에 다름없는.. 간혹 뉴스나 신문에서 보게 되는 전쟁지역의 사진들을 떠올려 보신다면, 그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 하셨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인 것이지요. 함께 본문 42절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시겠습니다. “그리한즉 나는 네게 대한 내 분노가 그치며 내 질투가 네게서 떠나고 마음이 평안하여 다시는 노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분노와 질투가 어느 정도였는지.. 어마무시한 형벌을 쏟아 붓고 나서야, 비로소 평안하여 질 것이고.. 다시는 노하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질투’라는 단어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질투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사랑이 크면 클수록, 상대방이 그 사랑에 반응하지 않고.. 다른 대상을 바라보면, 그 이상으로 질투도 커지게 마련입니다. 하나님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이지요.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하나님의 가장 근본적이고 최고가 되는 속성과 성품은 사랑이십니다. 택한 자녀.. 택한 백성에게 큰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따라 살아가는 자에게는.. 세상이 감당치 못할 만큼의 은사와 능력도 허락하십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넣어주셨고,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받아 누리는 일반은총도 허락하셨습니다. 무엇보다 독생자 예수를 아낌없이 내어 주셨지요. 하나님의 사랑이 이러할진대.. 그 질투심은 어떠하겠습니까? 이방 민족이었다면.. 택한 백성이 아니었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무슨 짓을 하건.. 누구를 믿던 상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낳고 기른 자녀가.. 이웃집 아저씨나 뒷집 아줌마가 더 좋아 보인다고 그곳에 가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 가서 잘 먹고 잘 살아라.” 하시겠습니까? 혹여 그렇게 하신다면, 그 부모가 잘못되고 이상한 것이지요. 정상적인 부모라면, 한 두 번이야 투정으로 받아들인다 해도.. 계속 그런다면, 두들겨 패서라도 정신 차리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지요. 참다 참다 못해서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어서 이러고 계신 것입니다.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언서를 읽으실 때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장면이 아닌, 심판하고자 하시는 그 이유와 배경에 초점을 맞추셔야 합니다. 그러면서 유다 백성들이 얼마나 큰 죄를 지어 왔는지.. 그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지, 사사기부터 열왕기의 내용들이 생각나야 합니다. 그리고는 ‘나만큼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아야 겠다.’라는 결단을 하셔야 하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하나님만을 믿고 섬기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너무도 잘 아십니다. 때문에 잘못을 해도, 회개만 하면 죄 없다 하실 뿐만 아니라.. 기억조차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정죄감이나 유혹을 주는 것은 사단의 속임인 것이지요. 우리는 그 속임에 넘어가지 않고.. 하나님께만 집중하도록 더욱 노력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형벌에서 멀어지는 것은,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도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기에 힘쓰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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