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0일 새벽예배 (새 406장 /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서론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어차피 소모품일 따름입니다. 놀라운 고대의 건축물들도.. 아름다운 화가의 그림 작품이나 작곡가의 음악도..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것들 입니다. 심지어 과거의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평가도, 세월과 시대가 바뀌어 감에 따라 변하여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기업에서 만드는 전자제품도 영구히 쓸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삼성에서 아무리 모든 기술력을 동원하여 튼튼하고 성능 좋은 휴대폰을 만든다 해도, 십 년.. 이십년..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지요. 절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소모품에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돈, 명예, 권력.. 이 땅에서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봐야 그 때뿐인 것을.. 죽으면 가져갈 수도 없는 것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것 같습니까? 바라기는 오직 유일하게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론
구약의 제사는, 오랜 시간 동안 행해져 왔던 것은 맞지만.. 절대 완성된 것도.. 영원히 지속적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전하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임시방편으로 주신 것뿐입니다. 그것은 복잡하면서도 번거로운 제사법이었습니다. 단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자기들의 욕구에 따라 편리하게 드린 제사에 대해서는 철저히 심판받는.. 상당히 까다로운 것이었지요. 때문에 이방의 우상에게 드리는 제사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방의 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제물을 드리는가?’입니다. 황소인지.. 어린 양인지.. 크고 좋은 것을 제물로 바칠수록 성공적인 제사가 됩니다. 물론 어린 자녀를 제물로 바치게 하는 이방신의 제사도 있고.. 신전에 있는 여사제들과 성관계를 맺어야 하는 제사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제사법에 비교하면.. 모든 절차가 단순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것은 제사를 드리는 목적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이 땅에서의 축복과 안전한 삶을 위해서.. 거기에 조금 더 보탠다면, 죽어서 좋은 곳에 갈 수 있도록.. 그것이 이방제사의 전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제사의 목적과 방법은 전혀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일상적으로 드려야 하는 번제도 있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드리는 제사도 있고.. 지은 죄를 사하여 주시도록 간구하는 속죄제도 있습니다. 제사 방법은 이미 여러 차례 말씀 드린 데로.. 여러분들도 성경에서 직접 볼 수 있듯이, 쉬운 부분이 하나도 없는 제사의 방법들입니다.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요령을 피울 수도 없는.. 항상 긴장 상태로 드려야 하는 제사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우상 숭배하는 것도 약간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이 반드시 잊지 말고 기억해야할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제사의 방법이라고는 하지만, 그 방법들이 성경에 기록된 것보다.. 우리가 그 말씀을 읽고 상상한 것보다.. 더 힘들고 어렵고 복잡하다 하더라도, 그 제사는 근본적으로 우리의 죄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제사 몇 번 드리는 것으로 사람의 죄가 사함을 받기에는 너무 부족한 것이지요. 왜냐하면, 인간은 아담이 범죄 한 이후..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느 한 사람이.. 자신의 죄를 깊이 회개하면서,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고.. 솔로몬의 일천 번제처럼 길이 역사에 남을만한 속죄제를 드렸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제사를 받으시고, 그가 지어왔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 이후에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어떠한 죄도 행위로든.. 마음속으로든.. 짓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최소한 속죄제는 드리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모여서 한 민족을 이루고.. 한 국가를 이루고.. 종래에는 세계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된다면, 그리고 그것이 자자손손 이어 진다면..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요. 예수님을 믿고, 나의 구주로 영접해서, 성령을 받고 난 뒤에.. 눈물콧물 다 흘리면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것처럼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죄를 짓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인간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사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해 묵상해 보신다면..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레위기의 제사법도, 굉장히 간결한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티끌만큼의 죄라도,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받아들이실 수가 없습니다.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노력해서 99.99퍼센트 수준의 거룩함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철저히 거룩해지기 위해 그 어떤 고행도 마다하지 않는 수도사들의 노력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먹물보다 더 검고, 하늘보다 더 큰 죄악이 남아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을 만났던 모든 성경의 인물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화로다 나여,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었으니, 이제 죽게 되었구나!”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짐승들을 번제물로 드려도 씻을 수 없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하나님께서는 단지 소.. 염소.. 양.. 비둘기.. 고운 곡식 가루.. 정해진 만큼만 드리면, 용서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상당한 배려이고.. 엄청난 은혜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여 주신 이 제사법조차도 영원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죄가 사함받기 위해 계속해서 짐승이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곧, 세상의 모든 짐승을 전부 죽인다 해도.. 한 사람의 죄조차 영원히 깨끗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참고로, 성경에서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과는 다르게.. 하나님께는 우리 각 사람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데, 아무리 조건을 쉽게 하고.. 기준을 낮춘다 해도.. 모든 짐승을 죽여서 한 영혼을 구원받게 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시고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 가운데 보내신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를 보내셔서 영원한 제사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더 이상 희생의 제사는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간들보다..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높으신 분이시며.. 동시에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14절에서는 ‘한 번의 제사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죄와 불법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17절에서 말씀하고 있지요. 이러한 약속의 말씀은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로마서를 보시면, 6장 10절에서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계심이니”, 요한일서 1장 9절에서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깨끗함을 얻었고, 하나님께서 더 이상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는 의인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이 은혜와 복음의 진리를 날마다 마음에 새기고,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 우리는 온전한 구원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일찍이 여호수아는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너희가 많은 복을 받게 되더라도, 여호와를 온전히 섬기지 않으면 언제든지 심판이 임할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과거의 제사법으로는 이 유언이 정곡을 찌르는 말씀입니다. 어떠한 제사법이 됐든, 거룩한 하나님 앞에 정결함으로 나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그 분 앞에 나아가는 것이, 세상의 모든 종교들 가운데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고.. 저와 여러분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에는, 기독교보다..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그 분을 섬기는 것이 쉬운 종교는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예수님만 의지하면, 하나님과 단독으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잘 믿으며, 그 분만을 온전히 의지하고 계십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현재도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믿음과 신앙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온전한 구원을 이룰 수 있는 것이지요. 오늘도 우리의 온전한 구원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만을 의지하며, 복된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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