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4일 새벽예배 (새 302장 /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본론
구약의 다섯 가지 제사 중에,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행했던 속죄제는.. 자신의 신분과 지위에 따라 가축을 바쳐야 했습니다. 제사장과 회중을 위해서는 수송아지로.. 족장들은 숫염소로.. 평민들은 그 형편에 따라 암염소나, 어린양, 비둘기 혹은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드려야 했지요. 속죄제의 특징은 가축에게 안수하여 자신의 죄를 전가시키고, 제사장은 그 가축의 피를 휘장 앞이나 제단 곁에 뿌리고.. 남은 피는 회막 문 앞 번제단 밑에 쏟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기름을 모두 제거하여 제단 위에서 불살라야 죄를 용서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당시 장정만 육십 만 명 이었습니다. 최소 60만 가정은 있었다는 얘기이지요.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 왕 같은 좋은 리더 밑에서 신앙 상태가 좋았다고 한다면, 매일 수 십, 수 백 차례 이상 어떤 특별한 날에는 수 만 차례라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백성들의 속죄제가 행해졌을 것입니다. 이것은 어떠한 결과를 예상하게 했겠습니까? 아마 언젠가는 속죄제에 필요한 모든 가축들이 멸종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 되어졌을 것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 곤란한 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축의 양은 급격히 줄어들 것이고.. 그것을 지켜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하나님 양쪽 모두 불안에 휩싸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으로 가축들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할 수도 없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에 안도감을 갖고 마음껏 죄를 지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어찌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인 것이지요. 이러한 연유로 하나님께서는 흠이 없고,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 계속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속죄제에 필요한 제물이 점점 줄어듬으로 인해 그것을 대신할 오직 유일한 제물..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했던 것처럼, 계속해서 바뀌어지는 대제사장들.. 가장 처음의 대제사장이었던 ‘아론’과 같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대제사장직을 맡는다면,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도 그나마 나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지요. 아론의 자녀로써 그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 직분을 맡을 뻔한 나답과 아비후는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성경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많은 대제사장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온갖 불법을 행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을 것입니다. 때문에, 속죄제를 위한 단 하나의 제물이 필요했던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영원토록 제사장직을 수행할 오직 유일한 단 한 사람의 제사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지요.
그렇다면, 기존의 제사장들은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오늘의 본문은 크게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레위 지파 계통의 제사장들은 그 생명이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기에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의 끝이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바로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최초의 인류인 아담이 범죄한 이후, 인간의 생명에는 한계가 생겼습니다. 영원히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계속 살 것처럼 권력을 탐하고.. 물질이나 명예 등에 집착하면, 우리의 죄를 더욱 가중시키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 역시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 역시.. 열방을 주께 돌아오게 하기 위한 제사장으로 세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 내가 잘 되는 것.. 그런 것에 집중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님이나 저와 같은 사역자들을 잘 섬겨 주시고 존중해 주시는 것은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지만, 그것이 예수님께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면 안 되는 것이지요. 우리 모든 개개인들이 오직 유일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거나 의지하는 일.. 다른 은혜와 다른 길에 마음을 두는 일..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입니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사망의 길로 인도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라도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 즉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 기존의 제사장들이 갖고 있던 부분은 거룩함에 대한 문제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제사장들 가운데.. 거룩함에 대해 자유했던 인물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최초의 제사장이었던 아론 역시.. 모세가 처음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서 40일을 지냈을 때, 모세가 없는 동안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인물이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영성이 부족하였고.. 그의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행동을 일삼다가, 결국 전쟁에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사무엘은 스스로 훌륭하였지만, 자녀 교육에 실패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에 왕을 세우도록 요구받는 빌미를 제공하였습니다. 다윗 왕 시대의 제사장 사독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정치권력에 집중하여, 후에 죽은 자의 부활을 부인하고 현세에 집중하는 사두개파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다윗 왕 시대의 또 다른 제사장 아비아달은, 자신의 입지를 위해 솔로몬이 아닌 아도니야의 편을 들었다가 제사장 직분이 파면되고 낙향을 당하였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제사장들이 거룩함에 있어서.. 순결함에 있어서.. 흠을 드러내 보였습니다. 그 모든 제사장들이 이렇게 한계와 문제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은,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들은 다른 사람을 위한 제사를 드리기 위해 앞서, 자신을 위해 제사를 드려야 했지요. 자신을 먼저 깨끗이 하지 않으면..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으면, 부정한 것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함에 의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부분을 성경에서 읽고 생각할 때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만의 하나..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의 레위 지파 제사장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아마도 지금 이 나이 때까지 사역을 하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제사장이라 해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죄는 짓는다 해도..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고 겁 없이 제사를 드렸다가, 나답과 아비후처럼..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죽임을 당했겠지요.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에..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짓던 휘장이 찢어지면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제사장으로 세움 받았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제사장을 통하여.. 오늘날 목사님을 통하여서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 개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제각기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은 죄에 대한 회개를 하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약 시대처럼 죽임을 당하지는 않겠지만,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으실 수가 없으신 것입니다. 일류 요리사가 아무리 훌륭한 솜씨로 요리를 해서 주더라도.. 때 묻은 손으로 음식을 만들어 주면, 먹지 않게 되는 것과 동일한 이치인 것이지요.
끝으로, 레위 계통의 제사장이 갖고 있던 한계는.. 율법으로 연약함 가운데 세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결단코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이 만약 완전한 것이었다면, 예수님께서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기 위해 왔다.”라고 말씀하실 리가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굳이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었지요. 율법은 단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 라인이었고, 죄를 깨닫게 하여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게 하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그것 자체로 완전하여지고, 거룩하여지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를 잘못 이해하여, 율법을 소유하고 잘 지키면 구원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요.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근거.. 영원한 기쁨과 평강이 가득한 저 하늘 나라에 갈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께서 많은 선지자들과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약속하시고.. 반드시 보내겠다고 맹세하신 오직 유일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어서.. 자신을 아낌없이 드리는 단 한 번의 희생 제사로, 우리를 깨끗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진리의 말씀을..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날마다 가슴 깊이 새겨야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에, 세상이 주는.. 사이비와 이단이 주는 구원에 대한 거짓 메시지에, 마음을 뺏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세상의 종교는 스스로의 노력과 힘으로 절대자를 찾거나 자신이 친히 신이 되려고 합니다. 과학은 인간의 지혜로 능히 영원에 가까운 삶.. 이 땅에서의 천국.. 자기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이비와 이단은 자기네들의 공동체로 들어오지 않으면, 자기네들의 교주를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특별히 히브리서 기자가 오늘 본문을 통하여 명확하고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은, 오직 유일한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그러한 길만 만들어 놓고 손 떼신 것이 아니라.. 연약한 우리 죄 많은 인간들이 실수하고 넘어지더라도 예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올 수 있도록, 항상 살아 계셔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중보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도.. 혹은 최근에..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이,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자신 없고 흔들리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 상황들.. 그 문제들..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오게 하는 것에 있어 붙잡히고 있는 모든 것들을, 과감히 끊어버리시고 예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만나 주실 것입니다. 이 새벽에도.. 그리고 오늘 하루도.. 오직 유일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분 안에 거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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