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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9:14-50:3 '손바닥에 새기신 사랑'

설교방/새벽 설교

by JJ family 2024. 1. 2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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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26일 새벽예배  (290/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서론

자녀를 낳아 키우다 보면.. 가끔씩 아이들에 의해 속상할 때가 있습니다. 건강을 생각해서 각종 야채와 고기와 생선 등, 좋은 재료를 가져다가.. 요리를 해주었는데, 먹기 싫다. 맛없다.’ 그러고.. 몸에 그다지 좋지 않은 햄이나 소시지, 라면 같은 것을 해주면, ‘정말 맛있다. 엄마 아빠 최고!’라 그러는 것이지요. 자녀가 여럿인 가정은.. 아이들이 서로 사이좋게 놀면 좋은데, 별것 아닌 일로 싸우고 다투면.. 훈계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고.. 본인 역시 부모님께 그러했던 것을 기억하며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지요. 하물며, 우리를 그분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시고.. 우리의 어떠함과 관계없이 독생자 예수를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려 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바라기는 그분의 마음을 시원케하고.. 흡족케 하기에 힘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론

시대가 얼마나 악하게 흘러가고 있는지.. 얼마나 종말을 향해 가고 있는지, 그런 것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가 있다면.. 어떠한 것으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강력 범죄의 증가.. 성적인 문란함.. 천륜과 인륜을 저버리는 행위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비록 우리나라가 얼마 전에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반열에 오르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부모가 자녀를.. 성인이 어린 아이를.. 학대하고 살인하는 끔찍한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보았을 때.. 한국 사회의 현실이 암담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거미는 자기 뱃속에 알을 낳기 때문에.. 깨어난 새끼 거미들은, 어미를 파먹고 자라다가 세상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거미나 다른 생물들은, 원래부터 그렇게 창조되었을 것이기에.. 그것들이 어떻게 살아가든 윤리적인지 부도덕한지, 언급할 부분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로 돕고.. 서로 돌보도록 창조하신 것이지요. 때문에 정상적인 부모이고.. 어른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자녀가 됐든.. 남의 아이가 됐든.. 돌보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나 내리 사랑이라고 해서..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은, 종종 하나님의 사랑과 비견되기도 하지요. 아무리 세상이 타락하고, 인간의 행실이 점점 악해진다 하더라도.. 부모의 기본적 마인드가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을 때의 상태라면 그렇지 않았겠지만.. 죄를 범한 이래로, 사람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악해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기본적으로 부모는 자녀를 자신의 목숨보다 사랑하겠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나 환경에 의해, 그러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이에 비해, 하나님은 만물을 조정하시는 분이시지.. 조종 당하시는 분은 아니시기 때문에, 택한 자녀와 백성을 결단코 잊어 버리실리 없으십니다. 그럴 가능성조차 아예 없는 분이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범한 죄악에 대한 징계 차원에서.. 나라는 망하게 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 가게 하거나 뿔뿔히 흩어지게 해서.. 볼품없게 되었다면, 그 상황을 누가 다시 회복시킬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가능하신 것이지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온전하게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전에 당했던 어려움이나 고통들이 생각나지 않고.. 다시금 하나님의 깊으신 은혜와 사랑에 감격할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것이지요.

물론, 상황을 보면.. 결단코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인터넷이나 SNS가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대기업이나 폭력 조직에 의해 어느 한 개인이 불합리한 일을 겪었을 때에, 맞대응하기가 어렵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왕따를 당한다던지.. 특정 학생에 의해 당하는 괴롭힘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역시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요. 정당한 이유가 있다 해도, 약소국이 강대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말이 되질 않습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지요. 이렇듯, 이스라엘이 바벨론과 페르시아에 의해 정복되어 있는 상황에서.. 자유를 되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은 변방에.. 티끌처럼 존재감조차 없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패권을 잡고 있는, 앗수르나 그 이후의 바벨론 같은 강대국들을 상대로.. 실력행사를 할 수 있을만한 지략이나.. 군사력이나.. 경제력 등, 그 어떠한 힘도 가진 것이 없어서인 것이지요.

하지만, 이 세상에는 영원한 강자도.. 절대적인 강자도 없습니다. 모든 것에는 흥망성쇠가 있고.. 언젠가는 더 힘센 사람, 더 강력한 조직이나 국가가 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나라의 역사가 그러했듯이.. 아무리 한때 세상을 주름잡고 호령했다 하더라도.. 언제 그러한 나라가 있었는지도 모르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한 것을 조정하시고, 제어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보면,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하고도.. 절대적이며.. 영원하신 강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붙잡힌 이스라엘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께서는 능히 건져내시고.. 구원하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남 유다 역시 정복당한 것에 있어서, 하나님께 책임이나 잘못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온 세상을 다스리시던 중에.. 살피셔야 할 곳과 상황이 너무 많으셔서, 미처 이스라엘을 신경 쓰실 여력이 없으셨겠습니까? 이것 역시 잘못된 생각이지요. 아니면, 하나님이 심심하셔서.. 재미난 일이 없을까 고민하시다가, 장난감 가지고 놀 듯이..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이래저래 어려움과 곤경에 빠지도록 하신 것이겠습니까? 이외에도 어떠한 의심이나 불경한 생각들도, 하나님께 성립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선하시고.. 은혜로우시며.. 인자와 자비가 무궁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또는 어떤 공동체나 국가가 환나과 고통을 당하는 것은, 그들의 죄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 위해서.. 성화의 과정 속에서.. 연단하시느라 그럴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잘못해서 그런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의 삶 가운데 고통이 찾아오면.. 지난 주일, 담임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외침 소리인 줄 알고, 즉시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전에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친구들과 장난치며 놀면서, 너는 머리가 돌이니까.. 머리에 새기면, 절대 잊어먹지 않겠다.’라는 말들을 농담삼아 주고 받았습니다. 요즘들어 문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얼굴에 화장하는 것처럼.. 몸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인데.. 간혹 특정 글자를 새기는 사람도 보게 됩니다. 자신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사람이나.. 좌우명 등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런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손바닥에 새기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곳에서.. 어떠한 형태와 모습으로 있던지, 절대 잊지 않고.. 놓치지 않고, 보호하시며 함께하시겠다는 것이지요. 주님의 이 사랑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오늘 하루도 주의 사랑 안에 거하며 평안함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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