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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4:1-11 '요나 ④: 하나님의 마음 알기'

설교방/시리즈 설교

by JJ family 2023. 3. 13. 12:50

본문

2021년 10월 24일 중고등부

서론

여러분, 공감이라는 단어 아시죠? 무슨 뜻이에요? 사전적인 의미는 타인의 주장이나 감정.. 생각에 찬성하고, 자신도 그렇다고 느끼는 것을 말해요. 이를 테면, 친한 친구가 다치거나.. 어려운 일을 겪게 되었을 때에, 그 친구가 느꼈을 감정을 비슷하게 느끼면서.. 진짜? 어떡해.. 정말 아프고 힘들었겠다.’라는 식으로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지요. 그것을 잘 하는 사람들은..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도 당사자의 마음을 잘 추스르고 다독이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목사님이 굉장히 취약한 부분 중의 하나인데.. 혹여 여러분들 가운데, 다른 사람의 기쁨이나 슬픔을 잘 공감해 주지 못한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그 영역을 포기할 필요는 없어요. 하나님께 기도하고 노력하면, 보통 사람만큼은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때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에,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해 보세요. 그러면, 단순한 공감 이상의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에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겠지요. 그렇게 해서, 누군가의 영혼을 살게 하는 일에 쓰임받는 중고등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론

여러분이 살다보면.. 가끔 기분이 싸늘할 때가 있어요.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 것이지요. 이를 테면, 왠지 몸이 으스스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 감기 올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고대로 감기가 들지요. 또는 중간이나 기말을 앞두고.. 왠지 모르게 이번 시험 굉장히 어려울 것 같은데..’라는 마음이 들었는데, 실제로 문제가 어렵게 출제된 경우도 있었을 거예요. 언제나 보면.. 불길한 예감 같은 것은 어찌 그리 잘 맞는 것 같은지, 참 신기할 때가 많은데.. 요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어요. 요나 선지자로 하여금 북 이스라엘의 적대국 수도인 니느웨로 가서 심판 메시지를 전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도망쳤던 이유가 뭐였어요? 그곳의 백성들이 혹시나 회개해서 멸망 당하는 일이 취소 될까봐 그랬어요. 우여곡절 끝에 니느웨로 가긴 했지만, 열심히 사역하지 않고.. 대충했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어요.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요나의 입장에서 니느웨 백성들이 왠지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맞았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 요나의 반응을 한 번 살펴볼까요? 함께 본문 2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지금 이 말씀에 기록된 요나의 고백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여드리는 표현이 아니에요. 주님은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구약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속성이자 성품인데.. 베베꼬이고 뒤틀린 마음으로, 비아냥거리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본문 3절에 기록된 대로.. 이제 본인이 해야할 일은 다 했으니, 더 이상 이 땅에 소망도 없고.. 자신을 데려가시도록 간청하고 있는 것이지요.

요나는 니느웨 성 밖으로 나가서.. 성읍 내부가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자리를 잡고 초막을 지었어요. 말이 초막이지.. 정글의 법칙 같은 프로그램에서 보았을 법한, 나무 막대기 몇 개 꽂아놓고.. 그 위에 나뭇가지나 나뭇잎을 얹어서 얼기설기 만든.. 그런 것이었어요.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했다고는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고된 대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지는 않을까 생각해서.. 40일을 지켜보기로 한 것이지요. 앗수르와 니느웨를 향한 증오와 적개심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에요. 혹시 여러분 가운데, 이 정도로 누군가를 미워해 본 경험이 있나요? 만약 학교에서 어떤 학생이 왕따를 시켰다거나.. 셔틀을 시킨다거나.. 지속적인 괴롭힘을 가했다면, 나와 저 녀석 중에.. 누구 한 명은 죽었으면 좋겠다. 저런 녀석이 어떻게 성적도 좋고, 인기도 많지? 이것은 무언가 잘못됐어.’라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에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예수님 믿고, 지난 날의 죄를 회개하더니.. 하루 아침에 완전 착한 아이로 변화된 것이지요. 이런 드라마틱한 경험을 하게 되면, 누굴 원망하겠어요? 당연히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친구가 끝까지 예수님을 잘 믿는지, 그때부터 주목해서 보겠지요.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인 것이에요.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강퍅한 마음을 가진 요나를 위해 한 가지 일을 하셨어요. 박넝쿨을 준비하신 것이지요. 함께 본문 6절과 7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요나 선지자가 초막을 만든 이유 중에 하나는, 그늘막이 필요해서였어요. 어디든 한낮에는 태양 때문에 굉장히 뜨겁고 더운데.. 그래도 그쪽 지역은 습도가 낮아서, 그늘 아래에 있으면 시원한 편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요나를 위해 잎이 넓은 박넝쿨을 자라게 하셨어요. 요나는 덕분에 시원하게 지낼 수 있어서.. 무척 좋아했어요. 그런데 이게 왠일! 다음 날 새벽에 벌레들이 박넝쿨의 잎을 모두 갉아 먹은 것이지요. 요나 선지자는 그런 줄도 모르고 꿀잠을 자고 있었을 것이고.. 그러다가 해가 뜨고 동풍마저 부니까, 어떻겠어요? 완전 더웠겠지요. 가만 있어도 땀이 줄줄 날만큼 된 것이에요. 안 그래도 한 성격하는 요나 선지자인데.. 이런 식으로 거처하고 있는 곳의 상황까지 좋지 않게 되니까 난리를 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슨 의도로 앗수르를 죽도록 미워하는 요나 선지자를 니느웨로 보내셔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하게 하셨을까요? 우리 생각에는 너무도 번거롭고 귀찮은 일을 하고 계신 것이지요. 다시스로 도망치거나.. 성의없이 말씀을 선포하거나.. 요나 본인이 심지도 않은 박넝쿨로 난리를 치기까지, 그래도 선지자니까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모르셔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보낼만한 사람이 마땅치 않아서 그래서였을까요? 그렇지는 않지요. 하나님은 요나가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이미 모두 알고 계셨어요. 그렇기에 물고기도 미리 준비하시고.. 박넝쿨도 예비해 놓으셨던 것이지요.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도 열방을 향한.. 생명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요나 선지자가 알기 원하셨던 것이에요. 왜요? 다른 선지자들에 비해서, 요나는 첫 시간에 얘기했던 대로.. 국수주의자에,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런 사람이 변하게 되면,, 같은 이스라엘 사람은 좀더 쉽게 변하고, 이방인들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지게 될 것을 기대하신 것이지요.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마음이 명확하게 언급되고 있어요. 함께 본문 10절과 11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당시 니느웨 성읍에는 자그마치 12만명이 살고 있었어요. 물론 고대 사회나 성경에서는 일반적으로 성인 남자들만 숫자를 세기 때문에.. 만약 여자와 아이들이 누락되었다고 한다면.. 최소 30만명 이상의 인구가 있었다는 뜻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그다지 큰 도시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큰 도시였던 것이에요. 게다가 가축들도 많이 있었을 것인데.. 그들이 아무리 우상 숭배를 하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았다고 하지만,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을 하나님께서 선호하시지는 않는 것이지요.

물론 여기서, 성경을 좀 아는 친구들은 반론을 제기할 지도 모르겠어요. 노아 시대 때 홍수로 심판하셨던 사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켰던 사건.. 가나안 정복할 당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 땅의 백성들을 모두 죽이라고 말씀하셨던 것.. 이러한 부분을 보면 하나님은 무자비하신 분 같으신데, 어떻게 지금은 인자와 자비가 많으신 사랑의 하나님으로 코스프레 하고 있는 것 같은지.. 이해되지 않는 것이지요. 여러분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어요. 하나님께서는 항상 기회를 주세요. 노아 시대 때에도.. 소돔과 고모라 때에도.. 가나안 원주민들에게도..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선지자도 보내시고.. 천재지변도 일으키시고.. 전염병도 돌게 하시고.. 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시는 것이지요. 이러한 부분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에요. 그러함에도, 변화가 없고.. 죄악의 길을 고수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거나 위해를 가하면, 눈물을 머금고 심판하시는 것이에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아시고, 항상 구원과 생명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함께 누가복음 157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한 사람의 죄인이 돌아오시는 것을 세상의 그 어떠한 것보다 기뻐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세요. 하물며 오늘 본문에서처럼.. 수십만의 사람들이 함께 회개해서 생명을 얻게 되었으니, 천국에서 대규모 잔치가 열렸겠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바라시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에요.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과 하는 일을 통해서.. 복음이 전하여지고, 생명이 흘러가는 것.. 그래서 우리가 머무르고 가는 곳마다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 일반적인 직업을 갖더라도, 이러한 길을 선택하고 나아가는 것을 기뻐하시지요. 바라기는,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게 되더라도.. 한 생명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열심히 생명 살리는 일에 앞장서는 중고등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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