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30일 (새 420장 / 너 성결키 위해)
본론
시편 107편의 전반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경험했던 하나님의 구원과.. 그들이 겪었던 흑암과 사망 같은 상황 속에서 건져 내셨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찬양하는 노래였습니다. 오늘 읽으신 후반부는 바다의 광풍으로부터 지켜주시는 하나님,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그분의 선하신 뜻과 계획에 따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전반부가 직접적인 경험에 의해 지혜와 교훈을 주는 것이었다면, 후반부는 약간 은유적인 표현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을 살펴보면, 먼저 23절에서 32절까지는 바다에서 광풍을 만난 선원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안전하게 항구로 돌아오는 내용입니다. 비행기가 개발되기 전까지.. 부국강병한 국가를 세우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다를 장악하는 것입니다. 필요한 물자를 빠르게 운송할 수 있고, 값비싼 상품들을 다른 나라와 교역하게 되면.. 부를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뿐만 아니라, 바다와 강이 있는 곳이면 배를 통해 어디든 갈 수 있기 때문에.. 쉽게 다른 나라를 공격하여 영토 확장이나.. 전리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고대 근동의 히타이트 민족이나, 이스라엘의 주변국 중의 하나였던 두로와 시돈이 발달했던 이유.. 중세 시대 스페인이 세계를 주름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해상 장악에 있었습니다. 뛰어난 선박 제작 기술과 훌륭한 항해술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다를 다니는 것이 녹록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증기기관이나 철강 주조술이 발달하기 전까지, 바다에서 배를 움직이려면.. 선원들이 직접 노를 저어야 했고, 원하는 방향과 적당한 수준의 바람이 불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바다’라는 것이 항상 잔잔한 상태로 있지 않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기상 이변이 있지요. 파도가 높게 치기도 하고, 때로는 본문에서 ‘광풍’이라 표현될 정도의 태풍이 불기도 합니다. 그 상황에 배가 있으면, 나무로 만들어졌기에 거의 100%의 확률로 난파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연유로 근대에 들어서기 전까지.. 사람들은 바다를 경외시하여 섬기기도 했습니다. 그리스 로마신화에서는 ‘포세이돈’, 우리나라에서는 ‘용왕신’ 같은 절대적인 존재를 만들어서.. 안전하게 바다를 다녀올 수 있도록 제사를 드리거나 했던 것이지요. 물론 바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사가 달려있기 때문에, 각자 나름대로의 방법과 데이터로 기상을 예측하기는 합니다만.. 항상 그것이 맞아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럴 때에는, 기상 이변의 원인이 어떠한 신의 진노 때문인지.. 즉석에서 알아보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가기 위해 탔던 배에 일어난 사건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는 선원들은, 엄청난 광풍과 그로 인한 파도로.. 배가 파도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가 낮은 곳까지 내려가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 난파할 위기에 놓였을 때에,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만이 광풍을 떠나게 하고, 파도가 잠잠케 하여,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시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본문 25절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광풍이 일어나 물결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이것은, 바다 깊은 곳에 살고 있는 생물에게 필요한 산소를 공급하기 위한 목적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받게 되는 심판과 징계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이 상황을 하필이면 바다 위에 있는 배 안의 선원들로 비유하는 이유는.. ‘바다’와 같은 대자연 앞에, 인간이 스스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아무 것도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전심으로 창조주이시고, 조물주이시며, 통치자이신 분을 찾고 찾아야 하는 것이지요. 감사한 것은, 그분은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분이셔서..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회복케 하시고 구원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107편에서 4절부터 32절까지는,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그분께 부르짖을 때에..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 은혜의 역사를 언급하며 그분을 찬양하도록 말씀했습니다. 이제 33절부터 43절까지는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공의로우신 통치하심에 따라, 온 세상과 모든 인생을 그분의 마음대로 다스리시는 것을 깨닫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강이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고.. 샘은 마른 땅이 되게 하시고, 주민들의 악함으로 옥토가 염전이 되게 하십니다. 반대로 광야는 연못으로.. 마른 땅은 샘물이 되게 하셔서, 배고픈 자들로 하여금 성읍에 거주하게 하시고, 농사의 소출을 풍성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 위에 복을 더하셔서 가축이 줄어들지 않게 하십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경험했어도.. 다시 압박과 재난과 우환을 당할 수 있습니다.
얼핏보면, 이 말씀들은.. 마치 하나님을 변덕꾸러기처럼 묘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약간은 조울증 환자나 싸이코패스처럼 느끼게 하기도 하지요.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이.. 본문에서 묘사하고 있는 대로, 아무 이유 없이 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움을 주시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축복을 주시는 분이십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에서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주민과 굶주린 자, 고관들과 궁핍한 자.. 한쪽은 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고, 다양한 문화를 누리면서, 어느 정도는 자신의 꿈과 계획을 이루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한쪽은 하루하루 먹고 자는 것을 걱정하며, 아무 소망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실 때에.. 애굽에서 종으로 살아갔던 시절을 기억하여,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들.. 가난한 사람들.. 한 마디로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흘러 보내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십계명을 요약하면 어떠한 말씀이 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모든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령이 가난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할 때에는 넘치는 복을 받았지만.. 먹고 살 만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살아가면, 심판과 징계를 받았던 것입니다. 이 부분은 우리의 삶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혜가 있다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되는지.. 그것을 밝히 깨달아 알아,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지요.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가 힘든 시기인 것 같습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들이 내년에는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힘들 것이다 내다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각자의 인생을 돌아보면, 언제는 쉬웠던 때가 있었습니까? 불확실함과 돌발 변수의 연속이었지요. 불안함과 근심 걱정으로 점철된 삶이었지만, 큰 사건 사고없이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돌보심과 은혜 아래, 하나님만을 붙잡았기에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욕심을 가지고..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신의 주변에 있는 연약한 자들에게 그분의 사랑과 인자하심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더 큰 복을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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