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19일 새벽설교 (새 68장 / 오 하나님 우리의 창조주시니)
서론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은.. 역사적으로 불교 영향권에 있던 나라들입니다. 그래서 유적지나 ‘명승고적’을 가보게 되면, 예외 없이 불상이 있거나 불교 사찰이 있는 것이지요.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그리스도인이라 하고.. 심지어 모태신앙인이라 할지라도, 불상 한 번 보지 못하신 분들은 없으실 것입니다. 대부분의 불상들은 금을 입혀서 금빛이 나거나.. 돌을 깎아 만든 것인데, 여러분들은 그 불상을 보실 때에.. 어떠한 생각이 드십니까? ‘멋있다, 아름답다, 마음이 평안해진다, 왠지 모를 신앙심이 생긴다.’하는 분들은 없을 줄로 압니다. 제가 예전 2005년도에..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선교사로 헌신해서 중국에 갔을 때였습니다. 중국어 공부를 위해 다니게 된 학교에서 국가 연휴에, 뤄양과 시안.. 그러니까 낙양과 서안을 방문했었습니다. 낙양은 중국의 3대 석굴 중의 하나인 ‘용문석굴’이라 해서.. 1킬로미터 정도의 거리에 불상만 11만개 정도 있는 곳입니다. 서안은 ‘병마용’으로 유명한 진시황의 무덤이 있는 곳이지요. 두 군데 모두 어마어마한 곳이기는 한데.. 용문석굴에 수없이 많고 다양한 불상들을 보면서, 제가 들었던 생각은 단 하나였습니다. ‘우와. 저거 만드느라 석공들이 엄청 고생했겠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저런 헛된 것에 오랜 시간과 노동력과 물질을 낭비하다니.. 안타깝다.’ 물론 불교 신자들 앞에서는 함부로 이런 얘기를 하면 실례겠지만, 여러분들도 저와 비슷한 마음이시리라 생각됩니다. 바라기는,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시고, 구원하여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론
이사야 39장에는 히스기야가 불치병에서 치유되고 나서, 바벨론 축하 사절단이 왔을 때.. 일어난 에피소드가 기록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보물고와 갖가지 물건들의 창고를 보여주며, 스스로를 자랑했던 히스기야의 교만함을 꾸짖으셨습니다. 그에 대한 징계로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하고, 포로로 잡혀가게 될 것이라 예언했었지요. 그리고 40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분위기가 바뀌고.. 포로들이 귀환하는 내용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사야 후반부도 이사야가 집필했다는 전제 아래..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이사야 40장 이후의 기록 시점이 최소한 히스기야 말년이나.. 그의 아들인 므낫세 때에 쓰여졌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기준으로 추측해 본다면, 므낫세 왕 때의 기록일 확률이 좀더 높습니다. 왜냐하면, 히스기야 왕은.. 남 유다의 왕들 중에서, 다윗의 길로 행하면서.. 하나님을 잘 섬겼던 왕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므낫세 왕은, 우상숭배의 극치를 이루었던 대표적인 왕이었는데.. 우상에 대한 언급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전반부에서도 그렇고.. 이전의 본문에서도 그렇고, 이사야 40장을 시작하면서.. 각 장마다 계속 등장하는 표현이 세 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격려의 말씀과 하나님의 절대성에 대한 표현들.. 그리고 우상숭배와 관련된 말씀들입니다. 왜 이러한 말씀들이 반복해서 언급되고 있는 것인지를 이해하시려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아실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히스기야 말년에 가장 강대국은 어디였습니까?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패권을 잡고 있던, 앗수르 제국이었습니다. 그들은 주전 721년 경에 살만에셀 왕 때에..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도 했었지요. 그때의 남 유다 왕은 히스기야였었는데.. 앗수르의 괴롭힘을 지속적으로 받아야만 했습니다. 특히나 앗수르의 산헤립 왕 때에는.. 남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이 점령을 당하기도 해서, 조공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산헤립 왕부터 에살핫돈, 아슈르 버니팔 왕으로 이어지는 때가.. 앗수르의 전성기였습니다. 가장 강력한 국력과 넓은 영토를 자랑하던 때였던 것이지요. 오죽하면, 앗수르에 의해 어려움을 당하지 않은 나라가 없었을 정도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언제 정복당할지 모르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개미 만큼 작디작은 남 유다는, 당연히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은 극심한 고난과 어려움에 봉착하면..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하나는 모든 것을 자포자기해서 폐인으로 살아가거나 심한 경우 목숨을 끊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나.. 단체를 알아본 다던지, 아니면 종교에 귀의를 하는 것이지요. 쉽게 말해서, 절대적인 존재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임을 믿는다면, 당연히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겠지요. 므낫세 왕도 누군가를 열심히 찾고 의지했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찾은 것은 세상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열심히 우상숭배를 했던 것입니다.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지 않아서, 징계 차원으로 찾아온 어려움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주변 나라들처럼, 여러 우상들을 섬긴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먼 곳에 계시거나 약하신 것처럼 느껴지고.. 눈에 보이면서도 가까이에 있는 우상들에게는 절대성을 부여했던 것이지요.
우상숭배하는 사람들이 종종 놓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상에게는 어떠한 능력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솜씨 좋은 기술자가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지요. 한때 우스개 소리로.. 광화문에 세워진 이순신 동상이 자정만 되면, 거리를 활보하며 순찰한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었는데.. 실제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모든 우상들은.. 만들어진 재료가 금이든 은이든.. 나무나, 돌이나, 금속이든 간에.. 눈은 있지만 볼 수 없고, 귀는 있지만 아무 것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팔이 있어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가 없고.. 다리가 있어도 걸어다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망부석처럼 절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물건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러한 죽어 있는 것을 믿는 이유는.. 그들의 학력이나 지적 수준의 어떠함을 떠나서, 영적으로 눈이 가리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신약 이후에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우상으로 규정하고 있기에, 어떠한 것을 만들지 않더라도.. 우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자녀나.. 배우자나.. 혹은 스펙이나 물질 등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할 수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의 마음을 날마다 점검함으로.. 그 어떤 우상도 삶 가운데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상을 믿는다는 것은, 스스로를 믿고.. 자신을 신격화시키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의식 중에.. 그 우상들에게는 아무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살펴보면, 결국에는 본인의 생각과 마음에 따라..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지요. 사사기에 자주 언급되는 표현처럼.. 소견에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얘기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그분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우상 숭배자들과 차이가 없다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현재 여러분들의 신앙 생활은 어떻습니까?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분을 의지하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우리를 능히 도우시고 구원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경험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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