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8:15-26 '참 소망의 하나님'
2016년 3월 31일 새벽예배 (새 486장 / 이 세상에 근심된)
본론
어제의 본문이 두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고였다고 한다면.. 오늘의 본문은 두로의 대표성을 갖고 있는 두로 왕의 죄악을 구체적으로 들추면서, 심판하시는 내용이 전반부에 언급되었고.. 후반부에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먼저 두로 왕의 죄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28장 3절에서 5절까지의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시겠습니다.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워서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 하고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네 큰 지혜와 네 무역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말미암아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사람은 절대 신이 될 수 없습니다. 신이 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면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만드시고 세상을 다스릴 권세도 주셨지만.. 신이 될 수 없음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선악과 나무를 동산 중앙에 놓으셨습니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심으로.. 날마다 매순간 진정한 신, 오직 유일한 통치자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게 하셨던 것이지요. 그러한 하나님께서 인간이 하나님보다 높아지려는 교만함을 가만 두시겠습니까? 아무리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럴 일은 절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왕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두로 왕은..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을 신의 영역에까지 높여 버린 것입니다. 다니엘은 스스로가 총명한 부분도 있긴 했지만, 그 누구보다 하나님을 경외했기에.. 당대에 가장 지혜로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알리없는 두로 왕은, 순전히 자신의 지혜와 총명으로 두로가 부강하게 된 것으로 착각하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두로 왕이 오직 자신만의 능력으로 재물이 넘치고 군사력이 좋은 나라를 세울 수 있었겠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환경적으로 천혜의 요새.. 지정학적으로 가장 좋은 나라에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훌륭한 선박 기술 갖추고, 여러 다양한 나라와 폭넓은 교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선조들의 피땀 흘린 노고의 결실입니다. 그렇다면 경제적으로 부요하고, 군사적으로는 강력하고, 주변국 모두 부러워할만한 나라에서 왕 노릇 할 수 있게 된 것은.. 으스대고 자랑할 것이 아닌, 감사의 제목들입니다.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나라..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며, 나눔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문제는 우리 인간이 타락한 본성을 갖고 있기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풍족히 누리고 있는 환경과 상황에 감사하기 보다는,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거 아십니까? 세계 인구를 1백 명으로 축소시키면 50명은 영양부족, 20명은 영양실조이며 그 중 한명은 굶어 죽기 직전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세계 인구의 70%가 지금도 여전히 가장 기초적인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되지 못한 채로 하루하루 연명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요즘 들어 감사의 제목이 없거나, 이래저래 우울해서 살맛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죄송하지만.. 그것은 배부른 고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교만한 자라고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본문 16절과 17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도록 하시겠습니다. “네 무역이 많으므로 네 가운데에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지키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냈고 불타는 돌들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 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여러분들을 지금 이 자리에까지.. 지금 현재의 직분과 신앙 수준에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무엇이었습니까? 물질의 풍요로움과 사업의 형통이었습니까? 아니면 힘들고 어려운.. 험한 산을 넘고 넘는 것과 같은 상황들이었습니까? 아마도 대부분은 고비 고비를 넘으셔서 여기까지 오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형통함을 위해 기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형통함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형통함이 아닌.. 세상적인 것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좋은 집과 멋진 차.. 유명해지고, 힘 있는 권세를 얻는 것들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것들은 사탕과 같은 것입니다. 입에서는 달콤하지만, 충치의 원인이 되고.. 심하면 당뇨병으로 이어지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잠시 잠간의 영화를 가져올 수는 있겠지만, 그 끝은 지옥이라는 파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두로 왕이 자신의 형통함으로 열방 가운데에서 기세 등등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엔 교만함에 빠져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어서 본문 22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도록 하시겠습니다.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시돈아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네 가운데에서 내 영광이 나타나리라 하셨다 하라 내가 그 가운데에서 심판을 행하여 내 거룩함을 나타낼 때에 무리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지라” 두로와 시돈을 이스라엘 북쪽 페니키아 지역에서 마치 쌍둥이처럼 중심 역할을 하던 두 항구 도시입니다. 조금 특이한 점은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두로의 죄나.. 시돈의 죄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특별히 시돈이 이스라엘에 끼친 악영향은 상당히 무지막지합니다. 바로 이세벨이지요. 이세벨은 원래 시돈의 공주였습니다. 하지만 오므리 왕조 때, 시돈과의 관계를 위해 아합의 아내로 이세벨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문제는 이세벨이 친정 부모의 영향을 받아 바알과 아세라에 대한 신앙이 특심하다는 것에 있습니다. 때문에 이세벨은 바알신앙으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를 대동단결 시키려 했었지요. 단순히 이스라엘을 괴롭힌 것뿐만 아니라.. 바알을 통하여 이스라엘 자체를 궤멸시키려 했기에, 시돈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인 것입니다.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함께 본문 25절과 26절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시겠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여러 민족 가운데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족속을 모으고 그들로 말미암아 여러 나라의 눈 앞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낼 때에 그들이 고국 땅 곧 내 종 야곱에게 준 땅에 거주할지라 그들이 그 가운데에 평안히 살면서 집을 건축하며 포도원을 만들고 그들의 사방에서 멸시하던 모든 자를 내가 심판할 때에 그들이 평안히 살며 내가 그 하나님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이스라엘은 그들의 범죄함으로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해 모든 수치는 사라지고, 다시 회복되어지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험준한 산이나 폭풍우 같은 상황이 닥쳐와도.. 절대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은 나락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택한 자녀들을 반드시 회복시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도 우리의 영혼육을 소생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시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