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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42:1-6 '주를 보게 하소서!'

설교방/일반 설교

by JJ family 2023. 2. 25. 18:2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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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22일 수요예배

서론

성경에 많은 믿음의 인물 가운데, 예수님을 포함해서 가장 많고도 극심한 환난과 고통을 당한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누굴 뽑으시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요셉을 꼽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기분 좋은 꿈을 꾼 것 치고는 너무도 많은 대가를 치렀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사도 바울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회심한 이후에 복음을 전하러 다니면서 많은 핍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형벌로 받기도 하고, 돌에 맞아 죽을 뻔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기 때문인 것이지요. 그런가하면, 예수님을 포함했을 경우, 무조건 예수님을 꼽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다윗이나 예레미야 같은 사람을 말씀하시는 성도님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믿음의 인물들에 대한 말씀을 읽거나.. 설교를 듣게 되면, 도전과 위로를 받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환난의 때를 믿음으로 견디어 내고.. 극복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현재 코로나 상황으로 어렵지 않은 분들이 없으실 텐데.. 바라기는 끝까지 믿음과 신앙을 잘 유지하셔서, 회복케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론

욥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의 소유물이었던 소와 나귀 떼, 양 떼와 수많은 종들, 그리고 낙타 떼들이 단 번에 몰살당했습니다. 그의 소유물들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욥기 13절 말씀에 잘 나와 있는데,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아도 엄청난 거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재물들은 또 모으면 되니까 어쩌면 괜찮았을지도 모를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전해져 온 소식은 그를 극도의 나락으로 떨어트렸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들 일곱과 딸 셋이 모두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장남이 자신의 집에서 동생들을 모두 불러 모아 잔치를 하는 도중에 그런 것입니다.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후에는 자신의 온몸에 악성 종기가 생기는 일도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시험으로만 끝이 나서,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욥은 믿음을 잘 지켰더라. 그것을 어여삐 여기신 하나님께서 다시 원상 복구 시키셨더라.’로 결말이 맺어졌다면 어떠했겠습니까? 욥은 정말 인간으로 존재했었던 것일까? 이런 삶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하면서, 우리의 신앙으로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사람.. 본받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사람으로 분류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욥이 받은 이 환난은 단지 맛보기에 불과합니다. 욥의 본격적인 고난은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요. 그것은 바로, 사람을 통해서 오는 시험이었습니다.

1단계로 그 시작을 알리는 사람이 욥의 아내입니다. 욥의 아내는 욥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욥기 29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아내와의 금슬이 너무나도 좋아서 열 명의 자녀를 보았습니다. ‘당시에 그 정도는 일반적이지 않습니까?’라고 말씀하실 수 있겠지만.. 불임이었던 아브라함의 아내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삭과 야곱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삭은 두 명이 전부였고, 야곱은 4명의 여인을 통해 13명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것에 비해 욥은 한 여인에게서 10명을 낳았으니, 그야말로 사랑 가득한 부부였던 것이지요. 그만큼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하나밖에 없는 아내가, 모든 소유물을 잃게 되고 자녀들마저 모두 죽게 되자 하나님을 욕하고 자살하라는 것입니다.

2단계는 욥의 형제들, 다시 말해 친가 식구들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욥기 615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 형제들은 개울과 같이 변덕스럽고 그들은 개울의 물살 같이 지나가누나 무슨 의미입니까? 욥 자신이 부요해서 잘 살았을 때는 갖은 아부와 친한 척을 하다가, 갑자기 망하게 되니 도와줄 생각은커녕 본체만체 한다는 것입니다. 욥의 상황이 비참하게 되니 행여나 자기들에게 도와달라는 핑계로 짐이 되지는 않을까 멀리하는 것이지요. 1914절에 보시면 아주 직설적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 친척은 나를 버렸으며, 가까운 친지들은 나를 잊었구나.” 이 얼마나 우울한 상황입니까?

3단계는 동네 이웃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309절과 10절 말씀에 보시면, 지난날과는 달리 동네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는 모습이 구체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함께 읽어 보시겠습니다. 이제는 그들이 나를 노래로 조롱하며 내가 그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으며 / 그들이 나를 미워하여 멀리 하고 서슴지 않고 내 얼굴에 침을 뱉는도다.” 29장에서는 부유했을 때의 욥이 많은 사람들을 섬기고, 그 사람들은 욥을 존중해주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30장에서는 그것이 급반전 되면서,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는 욥의 모습이 묘사되고 있지요. 욥이 갑자기 망하게 되니 평상시 그를 질투하던 사람들이 일어나 그의 상황을 고소해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여기에서 끝났으면 괜찮았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욥은 마지막 4단계에서 완전한 바닥으로 치닫게 됩니다. 그 원인 제공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신앙생활을 해 와서, 욥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죽마고우와 같은 세 명의 친구들입니다. 처음에는 욥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왔었지요. 그런데 욥의 한탄을 듣자마자, 그의 아픔에 동일시하거나 공감 해줄 생각은 하지 않고 정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정죄가 너무도 심해서 욥은 162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 위로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마음에 상처만 더 안겨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의 끊임없는 비판에 욥은 1919절에서 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원수가 되었구나라며 비관하게 됩니다. 친구들의 반응이 욥에게 있어 가장 절망적인 이유는, 보통의 남자들은 친구를 더 가깝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렸을 때부터 함께 놀고 함께 자라면서 희노애락을 공유하기 때문인 것이지요. 결혼해서 아내와 자녀가 생긴다 하더라도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해왔던 사람들은 친구입니다. 가정 안에 불화가 생기고.. 사랑하는 아내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친구만은 여러분을 이해해 줄 것입니다. 직장과 사업으로 힘들어 할 때도, 여러분과 동일시하며 그 모든 스트레스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 그것이 바로 친구입니다. 여러분보다 여러분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사람도 다름 아닌 친구인 것이지요. 그러한 친구들에게서조차 정죄를 받으니 얼마나 깊이 상심되겠습니까? 이제 욥에게는 아무 것도.. 어느 누구도 남지 않고, 철저히 혼자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욥이 그동안 받아왔던 사단으로부터의 시험.. 친구들에게서 받은 정죄.. 모든 환난과 시련의 시간들이 끝나고, 자신의 깨달음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욥기 1장에서 사단에 의해 시험을 받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욥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끝나는 41장까지.. 이 모든 상황을 겪으면서, 욥 스스로가 자신을 반성하는 것이지요. 욥기 2310절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연단에 의해.. 자기 자신조차 잘 알지 못했던 삶의 모든 찌끼들이 태워지고 정금같이 나아오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욥이 깨달으며 고백하고 있는 내용들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2절 말씀에 나오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못 하실 일이 없으시고, 계획하신 모든 일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욥이 이미 알고 있었던 부분이기는 합니다. 욥기를 전체적으로 찬찬히 읽어 보시면 잘 아시겠지만, 욥은 앞에서 여러 차례 하나님께서 마음에 결정하신 것들.. 또는 계획하신 것들.. 이 모든 것을 행하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910절에서는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느니라.”라고 말했고, 이어서 12절에서는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하고 누가 물을 수 있으랴.”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욥기 2313절과 14절은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게다가 욥기 28장을 보시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명철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작정하신 것은 반드시 하시는 분이심을 말했음에도.. 욥은 왜 본문 2절에서 계획하신 모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에 대해 새롭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앞서 말한 고백들이 422절에서의 고백과 그 의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이 바로 욥기 917절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욥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관련해서 하나님을 향해 그가 폭풍으로 나를 치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깊게 하시며라고 말하고 있지요. 어느 날 갑자기 닥쳐 온 시련에 대해서..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받는 비난에 대해서.. 이 모든 상황들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무 까닭 없이 자신을 짓밟으시고 해치신다 한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앞부분에서의 고백은 하나님께서 전능하시기는 하지만,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아무 계획성 없이 행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반면 오늘 본문에서의 고백은 하나님께서 분명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그것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이 달라진 것이지요.

욥기서는 창세기부터 성경 통독을 할 때에, 한 차례 고비를 가져다 주는 말씀입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1장과 2장은 욥이 시험을 받는 내용이고, 3장부터 31장 까지는 세 명의 친구와 논쟁을 하는 내용입니다. 32장에서 37장까지는 엘리후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 38장부터 오늘 본문 앞의 41장까지는 하나님께서 욥에게 호통하시는 내용입니다. 전체적인 흐름이 몇몇 사람의 논쟁이다 보니.. 욥기를 읽다보면, 약간 지루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 여러 성경 인물 가운데 욥을 가장 좋아하는 저로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교훈으로 삼을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소위, 인생의 롤모델로 삼으셔도 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욥입니다. 물론 시험 받기 전의 욥의 모습을 보면 약간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털어도 먼지 하나 나지 않을 것처럼, 너무도 완벽한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하지만 그 이후의 모습을 보면 우리들의 모습과 큰 차이가 없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하나님의 존재를 느낄 수 없을 때를 기억해 보시길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요즘 코로나 시국을 겪으면서, 그런 감정이 생기실 수도 있을 텐데.. 그 마음으로 욥기의 말씀을 읽어 보신다면, 천하의 욥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구나.’하는 것을 느끼실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일부러 힘들게 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괜히 심심하셔서.. 할 일이 없으셔서 고난을 허락하시고.. 그것을 보며 즐거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욥기 720절을 보시겠습니까? 욥은 다음과 같이 부르짖고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내가 범죄하였던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지음을 받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설령 큰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하나님께 안 좋은 영향이 가지는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기독교인들의 비리나 잘못에 대해 성도 전체를 비난하는 경우는 있어도, 하나님 자체를 욕하는 일은 거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고통 받을 때 그 신음 소리를 들으시며,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새디스트가 아닌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신학생들과 목사님들 가운데도 하나님을 새디스트 같은 분으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간혹 계십니다. 물론 그런 분들은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고난을 받으시기는 했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나를 고통 속에 일부러 몰아넣기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라고 말하는 고백을 들으면 마음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2911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설령 지금 현재의 삶이 너무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와 계획하심은 반드시 그 모든 상황을 선으로 바꾸십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시는 것이지요.

욥의 두 번째 고백은 하나님을 귀로만 듣다가 눈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욥은 이미 자신의 세 친구와 논쟁을 하면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하였습니다. 그동안 그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하나님을 잘 섬긴 욥으로서는 자신이 고난 받는 이유를 잘 몰랐기에, 하나님께 간간히 원망의 하소연과 한탄을 했습니다. 하지만, 환난 중에도 그가 하나님에 대해 얘기한 것은 틀린 것이 없습니다.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알게 됐든, 하나님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도 욥이 이렇게 힘들어 하는 것은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인은 벌하시고 의인은 축복하시는 하나님.. 언제나 욥의 예배를 받으셨던 하나님.. 욥이 기도할 때마다 항상 응답하셨던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욥은 68절에서, 나의 간구를 누가 들어 줄 것이며 나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아무리 간구하고 소원을 말하여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1324절에서는,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욥의 간구를 듣지 않는 것도 모자라서 아예 얼굴을 가리시고 원수 삼으신 것 같다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233절에서는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라며 한탄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말씀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욥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보여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자신이 그동안 하나님을 만나왔던 모든 예배와 기도의 방법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사용하고 있는 방법들로 하나님께 나아갔을 것입니다. 어떻게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을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어떠한 응답도.. 신호도 없다보니,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분이 계신 곳에 나아갈 수 있겠는가?”하고 통탄하고 있는 것이지요.

욥은 지금껏 자신이 알아왔던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직접 다양한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오늘 본문의 고백에서처럼 하나님에 대해서 들은 것이 더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욥은 대략 아브라함이나 이삭과 비슷한 시기의 인물이었습니다. 율법이나 성경이 없었던 족장 시대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구전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러이러한 분이시다.”라는 것이 대부분이었겠지요. 그 중심내용은 창세기 1장에서 11장을 스토리처럼 풀어낸 것과 비슷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들은 것만으로는 하나님을 정확하고도 온전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직접 경험해야 가능해지는 것이지요. 오늘날처럼 성경책이나 신학자들도 없었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했어야 했는데.. 시대적인 분위기 상,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실 너무나도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명확하게 알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일찍이 근대 과학의 기초를 마련하고,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유명한 아이작 뉴턴은 다음과 같은 말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세상이 날 어떻게 보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바닷가에서 장난치는 소년이라 생각해. 조약돌과 더 예쁜 조개껍질이 아닌, 더 동그랗고 특이한 조약돌과 조개껍질을 찾아다니는 소년 말이야. 내 앞에는 거대한 진리의 바다가 많은 비밀을 간직한 채로 펼쳐져 있어.” 뉴턴은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천재 과학자였습니다. 그는 너무도 재능이 많아서 과학뿐만 아니라 조폐 공사의 책임자 같은.. 많은 다른 일도 했습니다. 그러한 그가 죽어가면서 했던 말을 다시 해석해 본다면 내가 한 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수많은 것 가운데 단지 몇 가지만 발견했을 뿐이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람의 능력으로서는 하나님은커녕 그분이 창조하신 것들조차 다 알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몇 번 기도 응답 받고.. 특별한 신앙 체험을 하고.. 자신이 받은 성령의 은사를 믿고.. 수차례 성경 통독한 것으로, 마치 하나님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혹시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모습은 아닙니까?

욥이 하나님을 눈으로 보았다고 고백하는 것은 마치 모세가 하나님의 뒷모습을 본 것처럼 실제의 하나님 모습을 본 것만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욥기 381절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폭풍우 가운데 나타나셔서 욥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모습을 본 것과 다름없는 장면인 것이지요. 하지만 본문에서 하나님을 보았다라고 욥이 고백한 말은, 우리 각자의 삶 가운데 하나님을 경험한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응답받았던 경험.. 혹시라도 직장이나 가정에서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조롱 당하고, 핍박을 받으셨던 경험들.. 환난과 고통 중에 있을 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아파하고 있을 때.. 그 모든 아픔을 낫게 하시고, 회복케 하신 경험이 있으시다면.. 나의 슬픔을 기쁨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적이 있으셨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만난.. 하나님을 눈으로 본 사건이라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17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사도 바울은 복음을 증거 하면서.. 세 차례의 선교 여행을 다니던 가운데, 예수님의 흔적을 몸에 가지게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23절에서 27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그 구체적인 모습들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생긴 흉터를 가리키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만큼은 아니더라도.. 오늘 본문을 통해 보고 있는 욥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한 사건들이 있는 줄 믿습니다. 사도행전 18절에서 예수님은 무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면서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직접 예수님을 보았으니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증인은 목격자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한 저와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의 목격자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성령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받게 되는 모든 환난과 고통과 핍박이 저와 여러분을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욥이 그러는 것처럼 하나님을 귀로만 들었으나, 이제는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라는 고백을 하게 하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길 소망하십니까?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길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되는 것과 같은 성령 체험을 날마다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로, 욥은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허락에 의해 사단에게서 시험을 받고.. 세 명의 친구들과 논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욥의 죄나 실수에 의해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욥은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욥은 시험을 당한 뒤, 친구들과의 논쟁 가운데서 많은 실수를 범하였습니다. 먼저 630절 말씀을 보도록 하시겠습니다. 내 혀에 어찌 불의한 것이 있으랴 내 미각이 어찌 속임을 분간하지 못하랴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욥 자신만큼은 절대 어떠한 말실수도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167절에서는 이제 주께서 나를 피로하게 하시고 나의 온 집안을 패망하게 하셨나이다.”라고 욥은 말합니다. 자신의 모든 재산이 하루아침에 모두 날아가게 된 것.. 몸에는 끊임없이 긁어도 가려운 종기가 생겼고.. 아내를 비롯한 가족과 친척들, 거기에 친구들까지 자신을 대적하는 몹시 견디기 힘들고 어려운 이 상황들.. 이 모든 상황이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1617절에서는 그러나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라고까지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손에 포학이 있는지 없는지.. 자신의 기도가 정결한지 그렇지 않은지.. 그 판단을 하실 수 있는 분은 누구십니까?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런데 욥은 나의 손에 포학이 없고 정결한 기도를 드리도록 노력했다.”라고 한 것도 아니고.. 아예 스스로 정결하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까지로 올리는 엄청난 교만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욥의 가장 심한 말은 2412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성 중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신음하며 상한 자가 부르짖으나 하나님이 그들의 참상을 보지 아니하시느니라여기에서 욥은.. 하나님을 무자비하고, 은혜와 사랑이 없으신 분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욥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었다고는 하나,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욥은 자기가 한 잘못과 실수에 대해 하나님께 회개 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사용하시는 언어는 어떻습니까? 혹시 힘들고 어렵다는 이유로 하나님께 막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에 대해 잘못 알거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그릇된 정보를 전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이것은 분명 죄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단과 똑같이 되는 것이지요. 구약은 예수님 오시기 전입니다. 따라서 구약의 복음은 신약의 복음과 전하여지는 내용이 다릅니다. 구약에서 증거 되어야 하는 복음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에 대한 것입니다. 창세기 1518절에서 21절까지 보시면.. 하나님은 우리와 언약을 맺으시며 약속의 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출애굽기 346절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함께 읽어 보시겠습니다.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하나님의 놀라우신 성품에 대해 잘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지요. 이사야 35장에서는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고, 병든 자를 치유하시며, 그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들이 바로 구약에서 전해져야 할 복음입니다. 이외에 다른 내용을 말하면, 아무리 욥과 같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다 하더라도.. 내가 경험했던, 내가 알고 있던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앞서 말씀드린 구약의 복음과 대치되는 말을 하게 되면, 변명의 여지없이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전하는 이단과.. 다른 종교와 사상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깨달았기에 욥도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한다고 고백하는 것이지요.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욥의 고난은 단지 며칠 동안 그러고 만 것이 아닙니다. 함께 욥기 73절을 읽어보도록 하시겠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고달픈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최소 수개월 동안..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고, 시험이 끝나도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는 것은 기대할 수 없었던.. 그래서 절망 가운데 있어야만 했던 욥이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마저 욥이 구하는 기도와 간구와 신음 소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에게는 그의 능력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수많은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었지요. 열 두 명의 제자들이 잠시나마 배신했다고는 해도, 예수님께는 마리아를 비롯한 몇몇 제자들이 끝까지 그 곁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욥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의 사랑하는 아내와 신뢰했던 친구조차 그를 정죄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신앙을 지킨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돌밭이나 가시밭 같은 마음의 신앙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면.. 욥과 비슷한 상황을 겪을 때, 그것만큼은 아니더라도 별 것 아닌 시험에 하나님을 떠날 것입니다. 실제로 코로나 상황으로 비대면 예배가 장기화되면서.. 다양한 이유로 교회를 떠나는 성도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임을 한국의 교계 신문에서 보도하고 있지요.

혹시 여러분 가운데.. 열심히 교회도 나오고 예배도 드리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분이 계시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으니 강하고 담대하여라. 나의 강하고 능한 오른팔로 너를 붙들 것이다. 내가 너를 눈동자같이 지킬 것이다.’라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대부분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고 계시기는 하겠지만, 그것과 상관이 있든 없든.. 지금 현재 환난 가운데 계시는 분이 계십니까? 로마서 53절과 4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우리에게 환난이 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소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과거나 현재에 크든 작든 시험에 들어 죽을 것 같으시다면.. 하나님께서 외면하고 계신 것 같으시다면.. 오늘 본문에서처럼 욥과 같은 깨달음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분을 만나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인정받고, 크신 은혜를 받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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